[낱말속 사연]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난장판. 여러 사람이 떠들거나 뒤엉켜 뒤죽박죽이 된 장소를 뜻한다. "월드컵 축구 결승전 도중 훌리건(hooligan)이 경기장으로 난입, 난장판을 쳤다"

어지러울 란(亂), 마당 장(場), 자리를 뜻하는 순우리말 '판'으로 이뤄졌다. '場'과 '판'은 동의어다. '난장'이라 해도 되지만 굳이 '판'을 붙인 이유는 양수(陽數) 가운데 '3'을 좋아하는 우리말 특성 때문이다. '처가(妻家)'를 '처갓집', '초가(草家)'를 '초가집', '포승(捕繩)'을 '포승줄'처럼 말이다.

사용 시기는 과거제도가 활성화된 조선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광종(970년) 후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에 합격해야 했다. 과거 날짜가 잡히면 전국 양반집 자제들이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수 달 전부터 한양으로 몰려들었다. 대부분 급제를 위해 수년 동안 공부한 부유한 자제들과 선비들이다. 철저한 시험 준비로 이번에는 꼭 급제하겠다는 열망이 대단했다. 한양에 올라와서도 잠시라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은 물론 시험에 몰입했다.

한데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 급제 가능성이 없는 데다 가문으로부터 등 떠밀려 응시한 사람들이 문제였다. 이들은 애초부터 놀자 판이었다. 어차피 응시해 봐야 합격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이들은 동병상련, 술이나 마시며 잠시라도 가문의 눈을 피해 실컷 즐겨보자는 심보였다. 시험지를 받아 들었지만 답을 찾지 못하자 하나 둘 시험장 뒤편으로 몰려들었다. 아예 응시를 포기, 이미 자리 잡고 앉아 술 마시거나 구라 떠는 인간들이 곳곳에 모여 있었다. 합석이 시작되고 술판과 구라 판은 갈수록 커졌다. 고성방가의 오고 감은 당연했다. 심지어 술 취해 노상방뇨도 서슴지 않았고, 곳곳에서는 심기가 뒤틀린 인간들의 주먹질이 오가는 등 무질서에다 치안부재였다. 이른바 개판이었다. 이런 상황이 난장판이다.

불행히도 난장판이 유산되고 있다. 대단한 문화재도 아닌데 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사회분야가 난장판이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난장판이다. 과거 난장판과 차이가 있다면 요즘 난장판에는 아우성이 없다는 점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