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형 민족예술단 우금치 대표

봄 냄새가 제법이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다니기가 왠지 주변에 미안하다. 개울가에 버들강아지가 뽀얀 솜털을 자랑하고 시들은 풀섶 속엔 뾰족한 싹이 돋고 있다. 매화나무에 붙어 있는 꽃눈이 부풀어 올라 붉은 기운이 언제 터질지 모르겠다. 거무튀튀한 산과 들이 양껏 움츠리며 새 봄의 대생명 축제를 준비하고 서서히 그 악을 열고 있다. 졸졸졸졸 계곡의 얼음이 녹아 서곡을 울리며, 들판엔 노란 싹이 나무엔 파란 싹이 연분홍 진달래, 노란 생강나무꽃 눈처럼 하얀 산벗꽃, 제비꽃, 할미꽃, 민들레, 이름 모를 들꽃들로 곧 세상이 개벽되겠지.

봄은 위대하다.

온 세상에 생명을 주는 봄은 위대하다.

며칠 전 같이 일하는 후배 하나가 휴직을 하겠다고 했다.

왜 휴직을 하려 하는지 내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처럼 좋아진 단체 조건에서 개인적인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인은 단체의 분위기가 삭막해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후배를 어렵게 만든 건 아닌지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단원들에게 이러저러한 단체의 부정적 분위기를 지적하며 여러분들이 잘못했으니 바꾸라고 성질까지 떨며 잔소릴 늘어놨다.

'왜들 그럴까. 조금만 신경 쓰며 살면 되는데' 이러고 있을 때 내 귀에 다른 이유가 들려 왔다. 휴직을 고민했던 후배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에 힘들어 고민했다는 것이다. 언젠가 북춤을 추는데 넌 누구보다 키가 작아 보기 그러니까 빠지라고 했던 내 말, 정말 몸이 아파 어찌할 수 없는 상태라 주어진 배역을 할 수 없다고 얘기했더니 꾀병이라며 배역에서 빠졌던 상황. 다른 선배 단원이 문제가 생기면 대역을 하다가 돌아오면 언제든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단체생활을 한 지가 삼년 가까이 되는데 변변한 배역 하나 없이 떠 있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던가 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후배에게 희망이 없었던 것은 대표인 내게 눈 밖에 났다는 절망감이었다는 얘기였다. 단원들을 모아 놓고 성질까지 떨며 잔소릴 늘어놨던 나는 이 얘길 전해 듣고 충격이었다. 물론 처음엔 말도 안돼라고 생각하며 더욱 성질이 치받았다. 하지만 가만 돌이켜 생각하니 나는 모든 것이 내 기준이었고 나의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이라고 착각을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었다. 나는 예술이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며 19년간 단체 활동을 해 왔다.

예술은 사람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연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정작 내 주변을 모르고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이것뿐이랴, 무수히 많은 내 삶의 왜곡을 모르고 살고 있다.

지난 겨울의 추위, 말레이시아·태국 등을 덮쳤던 엄청난 대재앙이 무수히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의 이웃도, 모를 이유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거무튀튀한 흙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 거무튀튀한 흙이 찬찬한 봄을 준비한다.

지난 겨울의 비참한 죽음을 모두 잊은 채 황홀한 생명의 축제가 시작된다. 모두 되살아나는 것이다. 아니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나의 거무튀튀한 마음도 흙처럼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부족할지라고 봄의 넉넉하고 포근함을 받아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키워 봐야겠다.

'친구가 똥물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바깥에 선 채 욕을 하거나 비난의 말을 하기 쉽습니다. 대개 그렇게 하며 살고 있어요. 그러나 그럴 때 우리는 같이 똥물에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서 여기도 냄새가 나니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면 친구도 알아듣습니다. 바깥에 서서 나오라고 하면 안 나옵니다.'

국내 생명 운동의 '대부(代父)'로 불렸던 무위당(无爲堂) 장일순(張壹淳·1928~1994) 선생의 말씀이다. 올해는 장일순 선생의 이 말씀을 가슴속에 씨앗으로 키워 가며 살고 싶다. 대자연의 위대한 봄기운으로 내 가슴속에 작은 씨앗에 싹을 틔우고 싶다. 그리고 봄가뭄을 해갈하는 촉촉한 단비처럼 촉촉한 작품 하나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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