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의 窓]
충북본사 편집국장


문재인 대통령 공약집 제1장은 '적폐 청산'이다. 5대 비리 관련자의 고위 공직 배제가 주요 골자이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에 연루된 경우 고위 공직에 기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문 대통령의 이러한 공직관을 높이 평가해 지지한 유권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첫 인사부터 이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취임한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인사청문회를 앞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모두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후보는 5대 비리 중 여러 개를 저지른 경우도 있었으니, 공약(公約)은 이미 공염불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공약(空約)으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의 첫 조각을 두고 벌써부터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희화화하는 이들도 있다. 중요한 집권 화두였던 ‘공정(公正)’이 엇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다발적인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만 해도 그렇다. 그가 지명될 때만 해도 이제 ‘나라다운 나라’가 되겠구나 희망을 걸었던 국민들이 많다. ‘재벌저격수’로 불리며 기업의 투명성을 외쳐왔던 인물이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탈법·불공정·반칙에 가까운 지난 행적이 속속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가 과연 기업의 투명성을 요구하며 공정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상당수다. 강경화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도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잇단 거짓 해명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부장관을 맡기에 충분한 도덕성을 갖췄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청문회에서도 우리는 이른바 고관대작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이러한 얘기를 무수히 들어왔다. 일부 후보자는 금방 탄로날 거짓말을 하다 국회에서 표결처리도 하기 전에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불·탈법을 자행하고 남의 가난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데 앞장섰던 이들의 적나라한 욕망도 수없이 목도했다. 각료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위장전입에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논문 중복 게재에 이르기까지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데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물론, 어떤 인사든 잡음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사 때마다 입방아가 지속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더구나 혹평이 나올 때마다 이를 합리화하거나 자가당착의 모순도 겁내지 않은 무모함은 더 큰 문제다.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인사를 그르치거나 학연·지연 등 정실에 눈 먼 인사가 반복된다면, 올바른 국정을 기대할 수 없다. 민심을 거스르는 인사는 더 더욱 환영받을 수 없다. 총리나 장관이 되기 위해 죄송하다며 ‘굽실’거리고, 불신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분명 국가적으로도 ‘망신’이다.

문재인호의 성공은 국민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 결실은 인사 참사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흔히 '인사는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인사가 '망사(亡事)'가 되면 안 된다. 문제의 해법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말로만 소통을 외칠 게 아니라 국민의 뜻을 섬기기 위해 몸을 낮춰야 한다. 이미 낮췄다면 더 낮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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