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사성 폐기물 무단 폐기, 용융 소각시설 무단 사용, 감시기록 조작 등으로 말썽을 빚어온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오늘부터 본격적인 시민 검증을 받는다.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시민 불안이 가중되자 대전시가 시민 검증단을 구성, 검증 시스템을 가동하기에 이른 것은 이례적이다. 원자력연, 시민,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그룹 등 각계가 참여한 가운데 '원자력안전협약'을 체결·검증하는 방식이다. 국가검증체제에 대한 불신도 한몫 하고 있다.

원자력 안전 문제는 대전시의 해묵은 최대 현안이다. 대전 유성구는 원자력 시설 밀집지역이다. ‘하나로 원자로’가 있는 원자력연을 비롯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방폐물 관리 주체인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핵연료봉을 생산하는 한전원자력연료,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등이 들어서 있다. 중저준위 방폐물이 2만 9000드럼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고준위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또한 4.2t에 이른다. 30㎞ 반경안에 인구 280만명이 모여 산다.

원자력 유관기관들이 원자력 안전 정보를 감추기에 바쁘다 보니 시민으로부터 외면 받는 게 아닌가. 연구원은 지난날 수시로 고준위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봉까지도 대전으로 반입하면서 시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1987년 4월 고리발전소에서 폐연료봉 179봉을 들여오기 시작한 이래 모두 21차례에 폐연료봉 1699봉을 들여왔다. 손상된 핵연료도 309개에 달했다. 뒤늦게 이를 당초 발생지역으로 반환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4월 원자력연에 대한 특별조사 결과 모두 36건을 적발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원안위가 내부 제보에도 불구 이를 묵살하려다 검찰 수사로 불거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마지못해 나섰다는 점에서다. 시민단체는 어제 원안위 역할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방폐물 무단 폐기 사태 등에 대한 공익감사청구를 감사원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민검증단 성패는 원자력 시설 및 프로젝트에 대한 신뢰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 우선 내진성능 보강조치로 가동 중단된 '하나로 원자로' 재가동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또 파이로프로세싱, 즉 사용후 핵연료 건식재처리 기술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계획대로 오는 7월부터 가동할 것이냐는 문제다. 세계적으로 성공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우려감을 키운다. 모름지기 투명하고 합리적인 원자력 안전문제를 도출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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