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충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에세이]

한남금북정맥은 한강의 남쪽과 금강의 북쪽을 흐르는 마루금으로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해 충북을 남과 북으로 나눈다. 정맥은 백두대간을 통해 이동하는 동·식물들의 생태 이동통로이기도 하고,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민족정기가 우리 삶의 영역으로 통하는 길이기도 하다.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어우러졌던 정맥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생채기가 나기도 하고,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람 사는 마을은 고개마다 민초들의 삶의 이야기를 묻어 놓았으며, 산길은 동물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작은구티재를 지나 몇 봉우리 올라서면 탕골이 나온다. 탕골은 호랑봉이 동남쪽에서 서쪽 시루봉을 바라보며 마을을 호위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수살돌이 있는데 이는 호장군이 산을 건너 띄다 떨어뜨린 돌을 마을 입구에 가져다 놓은 것이라 한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달천과 정맥이 해우를 하며 봉우리를 한껏 치켜 올린다. 장군봉이다. 장군봉 주위에 만들어진 임도는 정맥을 넘어 달천으로 내려가다 멈춰선다.

시루봉 오름길에 제단이 있다. 제단은 말끔하게 정리돼 있다. 제단 바로 위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있는데 소나무를 베어내면 사람이 병난다는 전설이 있다. 오래전 타 동네사람이 소나무 가지를 자르고 나서 팔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다고 한다.

시루봉은 중티마을 사람들이 신성 시하는 산으로 매년 정월에 날을 받아 제를 지냈다. 제를 지낼 때는 스님들과 무당들도 함께 와 기도를 했다. 제를 지내는 사람은 자연고을마다 동네 어른 및 3명이 목욕재개하고 올랐다. 제를 지낼 때 동네주민들은 부정한 사람을 만날까봐 사흘간 집 밖에 나오지 않았다. 시루봉 정상에는 아직도 돌탑이 가지런히 쌓여 신성한 봉우리였음을 알려준다. 봉우리를 지나면 평평한 능선이 나온다. 그곳을 지역민들은 곰마당이라 부른다. 곰마당은 100년 전까지만 해도 곰들이 많이 모여 놀던 장소라 한다. 곰마당을 내려서면 곰쟁이재가 있는데, 이 재는 산외면 중티리 주민들이 보은장에 갈 때 이 고개를 넘어 두평리 곰쟁이 마을을 통해 보청천을 따라 갔다한다. 곰쟁이 마을은 '동국여지승람' 등 옛 지리서에서 고을 특산품을 웅담으로 기록하고 있다.(報恩郡紙) 이는 이 마을을 중심으로 한 한남금북정맥에 얼마나 많은 곰들이 생존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웃마을인 이원리에는 곰골이 있으며 성티리 마을에는 곰골재가 있다. 곰골재는 청주에서 보은을 갈 때 넘는 고개로 쓴골이라 부르며 도쟁이로 넘어선다. 곰과 사람이 함께 노닐던 이 구간은 점판암돌이 채석되면서 사람의 전유 공간으로 바뀐다. 점판암이 구들장으로 쓰여지면서 급기야 산줄기까지 파고들었다. 채석광산에 의해 보청천에 흰 앙금이 생기고 수생태계가 파괴되면서 광산은 멈춰 섰지만 아직도 그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남금북정맥은 물을 나누는 산줄기뿐만이 아니라 생태의 보고이자, 삶의 터전이었고, 역사의 삶결을 간직한 곳이다. 곰쟁이에 곰이 다시 찾을 수 있을까?" 1983년 5월 마지막 남은 반달가슴곰이 밀렵꾼에 의해 설악산에서 포획·사살됐다. 이후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서 복원돼 삶의 터전을 잡았다. 그 곰이 백두대간을 거쳐 그들의 고향인 곰쟁이 마을을 찾아 돌아오는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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