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리학당 오원재 원장
[이상엽 역학이야기]

시간[時]은 멈추지 않고 변화를 주관한다. 모든 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바꾸어 놓는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같지 않은 이유다. 그렇다고 시간의 근간인 천체의 자전·공전까지 바꾸는 건 아니다. 불변의 진리 속에서 변화가 거듭된다는 얘기다.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역법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겼다. 해와 달 그리고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 등의 운행은 왕조의 흥망성쇠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역법의 반포는 왕조 국가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나타내는 방편으로도 활용됐다. 왕조가 바뀌면 개력(改曆)을 단행해 새해의 시작[歲首]을 바꾼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다.

고려 말까지 우리 조상들은 중국 달력을 가져다 썼다. 그래서 우리나라 천문현상과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해와 달이 일렬로 서는 합삭(合朔)과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日蝕) 등이 그것이다. 이를 확인한 조선은 세종 24년부터 서울[漢陽]을 기준으로 해와 달의 운행을 계산하고 또 해 그림자[日晷]를 관찰해 달력을 만들어 일식, 월식 등을 정확히 예측했다.

이후 1653년(효종 4년)부터는 시헌력법을 사용했고, 고종 32년 1895년에는 우리 국토 중심부를 관통하는 동경 127도 30분을 표준자오선으로 채택해 국민의 생체리듬은 물론 천문현상과 일치하는 우리시간으로 만든 달력을 사용해왔다. 요즘도 설과 추석은 물론 생일과 제삿날을 비롯한 각종 기념일을 음력으로 치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음력의 정확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일합방 이후 일제의 우리 민족정기 말살정책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일본시간[동경 135도]으로 달력을 만들어 쓰다가 해방이 되고 우리 시간[동경 127도 30분]으로 달력을 만들어 사용했지만, 1961년 5.16혁명 이후 다시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채택해 달력을 만들어 쓰고 있다. 정부가 채택한 표준시지만 동해중부(울릉도 동쪽350㎞지점)를 남북으로 통과하는 자오선임을 고려하면 현재 우리 음력은 식민지시대 달력과 같은 것으로, 조선시대 달력보다도 훨씬 더 못한 달력을 쓰고 있다.

현재의 우리가 쓰는 음력은 역법[시헌력법]과는 맞지 않고, 표준시간과는 맞는 오류투성이 달력이다. 현행 역법을 <역서>에서 "음력에서의 한 달은 달의 위상 변화를 기준으로 한 삭망월로 결정한다."라고 했고, 시헌력법의 정의 또한 같기 때문이다. 이 역법을 고려하면 우리 국토 중심을 통과하는 동경 127도 30분으로 음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 음력은 일본에는 맞는 달력,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 오류투성이 달력이다. 실례로 올해 윤달은 6월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5월에 윤달이 배치됐다. 음력 6월 중기인 대서(大暑)가 윤 5월로 결정된 달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시헌역법을 근거로 계산하면 대서는 올해 윤 5월 29일 23시 46분이 된다. 윤달로 결정된 5월에는 6월의 중기인 대서가 있게 되어 윤달이 될 수 없고, 올해 6월로 결정된 달에는 대서가 없게 되어 윤달이 된다. 이런 오류는 역법을 근거로 합삭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표준시간으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슘 원자시계와 태양시의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전 세계가 윤초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 뜨고 지는 해와 달보다 약 30분이나 빠른(동경 135도) 표준시로 음력을 만드는 것은 시급히 광정(匡正)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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