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식 충북본사 취재2부장
[데스크칼럼]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학생이었다.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국가대표 선수들의 활약에 흥분하고 응원을 보냈다. 거리에는 응원을 나온 시민들로 넘쳐났다.

시험기간이었지만 거리응원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애를 통틀어 그렇게 열정과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소리칠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까 싶다. 월드컵 기간 태극기는 정말 자랑스러웠다. 붉은티셔츠와 함께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응원을 나온 시민들은 태극기 하나 쯤은 들고 있었다. 태극기를 변형해 옷처럼 입고 다니던 태극기 패션도 크게 유행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는 대대적인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였다.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부부싸움을 하던 주인공 부부가 태극기 하강식 시간에 애국가가 울리자 싸움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추진한 태극기 달기 운동은 그러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현장에서는 태극기 공급이 부족해 팔 수도 없는데 태극기 판매율을 보고하라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억지로 국민들의 애국심을 이끌어 내려 한데 대한 반감이 나오기도 했다.

2017년의 태극기는 어땠을까. 특검의 수사를 통해 국정농단 세력이 어떻게 이 나라를 말아먹었는지 하나하나 드러났다. 또 국민과의 소통은 제로에 가까웠던 대통령이 정작 비선실세, 비선의료진과는 어떤 관계였는지도 만천하에 알려졌다.

그럼에도 소위 태극기시위대는 ‘눈’과 ‘귀’를 닫고 박근혜를 지키겠다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국정농단에 대한 실체가 드러날수록, 또 태극기시위가 점점 더 과격해질수록 주변에서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태극기는 자칭 ‘애국보수’들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이 나라와 조국을 걱정하는 마음에서는 ‘촛불시위대’도 뒤지지 않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태극기’는 ‘촛불’의 대척점이 됐다.

이제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촛불의 물결에 힘입어 조기에 치러진 대선을 통해서다. 새 대통령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통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 밝혔듯이 촛불을 든 시민도, 태극기를 든 시민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이제 문 대통령은 이들을 모두 끌어안은 대통령이 돼야 한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에서 강압적으로 태극기를 달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국민들의 애국심이 자리잡는 것은 아니다. 축구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신체적 열세를 딛고 강호들을 하나하나 꺾으며 승전보를 울렸던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을 보며 국민들은 우리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했다. 너도 나도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2002년의 경험에서 유추한다면 국민들이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그 대부분은 이미 문 대통령이 선거기간 약속한 공약에 담겨있다. 이제 그것을 실천하는 길만 남아있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대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가 된다면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국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국기의 상징인 태극기를 자발적으로 흔들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넘겨서는 안 된다. 국민 스스로 대통령과 정부가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어가는지 감시하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 도와야 한다. 대통령이 권한을 분산한다면 그 책임은 국민들도 함께 해야 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