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 국가핵융합연구소장
[투데이포럼]

과학의 날은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했다. 1968년 제1회 과학의 날이 개최된 이래 총 49번의 행사가 있었고, 그 때마다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과학계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속도’일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하루가 다르게 이루어져 왔으며, 이에 따라 인류의 삶도 함께 급격하게 변화해왔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함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정책 역시 변화하며,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통해 집중하는 연구개발 분야가 달라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단시일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초과학 분야는 관심에서 멀어지거나, 연구를 지속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진정한 과학의 힘은 오랜 시간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인류의 역사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위대한 연구 성과는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인내의 시간을 거친 끝에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2013년 노벨물리학상의 수상의 영예를 안은 힉스 교수의 경우 1964년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견했지만, 실제로 힉스입자의 존재는 49년이 지나서야 유럽원자핵 공동연구소(CERN)에서 보유한 대형강입자가속기(LHC)를 활용한 실험을 통해 입증할 수 있었다. 2015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중력파 검출 성과 역시 아인슈타인이 예견했던 중력파를 찾기 위해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100년간 고민하고, 시도한 결과였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관점으로 볼 때 이러한 연구 과정은 너무 느리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발전의 속도가 느리거나, 연구 결과를 얻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느린 과학은 미래 혁신의 밑바탕이 된다.

인류의 미래에너지원을 개발하기 위한 핵융합연구 역시 느린 과학에 속한다. 태양에너지의 원리가 핵융합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핵융합을 지구에서 만들어 인류의 무한에너지원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은 전 세계 과학자들을 통해 수십 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핵융합 상용화 기술에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꼽히는 토카막 장치가 개발된 지도 50여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핵융합 상용 발전을 위해서는 30여년의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초전도핵융합장치 KSTAR만 봐도 2008년 첫 번째 실험에서 불과 0.24초 가량 플라즈마를 만들었지만, 지난해 실험에서 세계 최초로 70초 운전에 성공했다. 이처럼 오랜 시간의 연구와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느린 과학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 나가려는 연구자의 노력과 함께 국민과 정부의 ‘인내심 있는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과학은 원래 느리고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을 견뎌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임에도 좀 더 빠른 성과를 내고 목표를 얻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기에 그동안 과학계는 ‘빠른 과학’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솝우화에서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제대로 걸어간 거북이는 결국 결승선을 넘고야 만다. 거북이에게 진심어린 응원이 주어진다면, 거북이의 러닝타임도 조금이나마 빨라지지 않았을까? 핵융합연구와 같이 느리지만 힘찬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장기 연구 분야에서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5월 새롭게 출발하게 될 차기 정부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강화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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