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y 초대석]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
KIST서 유전자 연구 주도
대기업선 과업 달성에 한계
매출액 40% 연구개발 투자
GMP 투자유치, 내년쯤 결실
“실패 두려워말고 도전해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다시 한 번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벤처 붐이 일어나야 합니다.”

국내 최초 바이오 벤처기업인 바이오니아의 박한오 대표는 청년 일자리 해법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이 문을 열게 되면 기업 확장 과정에서 경영 관리 등 인문학적 인력과 기술 연구·개발 등 공학적 일자리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대기업의 경우 구조적인 특성상 주도적인 역할 및 과업 달성에 한계가 있다”며 “기술력 있는 벤처에 입사해 그 기업을 대기업으로 만드는 비전을 품으라”고 조언했다.

‘유전자가 내 인생의 전부’라는 그는 KAIST 생화학과 석사 시절인 1984년 국내에서 처음 실시된 유전자 연구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모든 생명의 기본 물질인 유전자를 합성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기업명 ‘바이오니아’는 바이오와 개척자를 뜻하는 파이오니아를 합한 단어로 박 대표는 말 그대로 유전자 분야 국내 최초의 개척자로 꼽힌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입사한 그는 KIST 유전공학센터에서 유전자 관련 연구를 주도했다.

KIST 유전공학센터가 독립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으로 재탄생하면서 대전 시민이 된 박 대표는 유전자 관련 전 분야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심을 거듭하던 그는 유전자 관련 연구기기 장비들을 국내에서 만들 수 있는 기업을 세워야 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됐다. 박 대표는 1992년 과감히 사직서를 던졌다. 그는 연구실 동료들에게 받은 엔젤 투자금과 퇴직금 등으로 마련한 8700만원으로 국내 최초 바이오 벤처기업인 바이오니아를 창업했다.

박 대표는 “국내 최초로 바이오 벤처기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벤처캐피탈이나 투자자가 없었다”며 “8000여 만원을 모았지만 해외 유전자 합성기 가격이 1억원이 넘어 앞길이 막막했다”고 당시 소회를 전했다.

박 대표는 좌절하지 않았다. 과학기술부를 상대로 거침없이 연구원 창업제도를 제안했고, 이를 통해 유전자 분야 개척자 바이오니아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됐다. 그는 본사까지 도로와 수로가 없어 직접 길을 닦는 열성을 보였고, 예기치 못한 화재로 모든 시설이 전소되는 큰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인 유전자 연구에만 매진했다. 박 대표의 젊음과 땀이 들어간 바이오니아는 매출액의 4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글로벌 유전자전문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박 대표는 “올해 GMP(의약품 제조 품질 관리 기준) 투자유치를 기점으로 신약관련 풀 라인업을 구축해 내년쯤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개발한 바이오니아의 진단 장비는 에이즈, B형·C형 간염, 지카바이러스 등 감염 종류별 시약만 교체하면 모두 가려낼 수 있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뽐낸다.

그는 청년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고 창업하라”며 “유전자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뛴다”고 환하게 웃었다.

신인철 기자 pf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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