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투데이포럼]

선거 때만 되면 입후보자들의 기발하고 허황된 공약들이 남발된다. 지지율을 올리기에 초조한 후보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 무슨 약속인들 못할까.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이 냉정해져야 한다. 우리는 이들의 공약이 진실한지 허구적인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BC 106~43)는 '수사학'에서 공직자나 공직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정책 연설의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했다. 그가 도출한 정책 연설이 갖춰야할 중요 요소는 공약의 진실성 여부를 검증하는 준거로 쓸 수 있을 법하다.

키케로는 정책 연설은 어떤 일이 꼭 필요한지 아닌지, 어떤 일이 실현 가능한지 아닌지, 즉 유용성과 실현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대 정책학에서 정책을 입안할 때 '사회적 바람직성'(social desirability)과 '실현가능성'(feasibility)을 중시하고 있는 맥락과 그대로 일치된다. 일찍이 정부 정책의 요체를 간파한 키케로의 통찰이 놀랍지 않은가. 그는 이를 토대로 정책의 필요성을 검토할 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까지 따져보아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아무리 그 사회에 요긴하고 바람직한 정책이라도 실현 불가능하다면 착수될 수도 없는 법. 키케로는 실현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먼저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고려해야 할 요인들을 망라하여 제시하고 있다.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 반대자가 누구인지, 언제 실행할 것인지, 어디에서 할 것인지, 어떤 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누구를 우군으로 삼을 것인지, 일의 실행과 관련해서 어떤 것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케로는 정책 실행 과정의 난점들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현대 정책학자들을 경각시키는 유용한 대목이다.

으레 선거 때면 등장하는 우리나라 후보들의 졸속 정책 공약들을 키케로의 심도 있는 검증 기준으로 비추어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는 정책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은커녕 겨우 공약들의 재원 조달 가능성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수준이다. 그마저도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을 아예 결여한 경우가 태반이어서 검증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앞 다투어 내놓는 터무니없는 일자리 공약과 복지 공약들이 대표적인 예다.

기본적인 정책 공약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공약(空約) 연설을 일방적으로 들어야하는 국민들의 처지가 딱하다. 이는 정책의 유용성과 실현가능성을 조리 있게 제시하고 설득하려는 연설이 아니라 국민을 우롱하고 현혹하는 교묘한 말잔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허무맹랑한 공약들은 "유용하지 않다면 실행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실현 불가능하다면 착수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국민들의 날카로운 비판과 표의 심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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