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범 대전 대덕구청장
[목요세평]

사람은 서로 어울려 산다.

그러면서 겪는 일은 상대에 대한 좋은 이야기 보다는 안 좋은 이야기가 더 솔깃하게 끌리고 관심이 가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는 희망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훨씬 많겠지만 나 자신이나 타인의 험담이나 오해는 아주 쉽게 퍼지다 보니 세상이 각박하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오해와 편견이 얼마나 사람 사이의 믿음을 해치고 해악을 끼치는지 다음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 동료 세 사람은 한집에 함께 살았다. 그들은 현지인 가정부를 두고 청소나 요리를 부탁했고, 현지 가정부는 꽤 성실해 모든 일을 그들 마음에 들게 해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들은 집에 있는 술병의 술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가정부가 몰래 홀짝홀짝 마시는 것이 아닌 지’를 의심하게 됐고, 진상을 밝히기 위해 남은 술이 얼마나 되는지 술병에 표시해 놓았다.

어느 늦은 밤 그들은 골프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자기 전에 한 잔 더 할 생각을 하다가 술병에서 술이 자꾸 줄어들었던 것을 떠올리게 된다. 취기가 좀 돈 상태였던 그들은 이미 의심에서 확신범으로 가고 있는 가정부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술이 남은 병에 소변을 채워 넣고 선반 위에 도로 갖다 놓고 어떻게 되는지 두고 봤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 확인한 결과 술병 안에 있던 술(?)은 여전히 줄어들고 있었고, 급기야 가정부를 불러 술병의 술을 마셨냐고 따져 물었다.

가정부에게서 돌아온 답은 그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가정부는 그들의 추궁에 그저 웃으며 “제가 마시지 않았어요. 음식을 만들 때 사용했습니다”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사례일 수 있지만, 상대를 의심하고 오해하기 전에 서로 대화로 풀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결국 그들은 그들의 소변으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이 사례에서의 문제는 소통하기보다는 의심하고 그 부정적 의심을 확정하는 편견과 오해는 결국 그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오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줄 수 있다.

살아가면서 터놓고 진실하게 대화하면 아주 쉬운 일이 많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며 표현방법도 다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가끔은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할 수도 있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때론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은 흔하고 쉬운 일이다.

최근 대선 정국을 맞은 정치권에서도 이런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다른 진영의 사람, 또는 같은 진영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발전적 비판이 아닌 비난과 흑색선전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구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이없는 비난과 괴담같이 퍼지는 잘못된 사실 때문에 곤욕스러웠던 적도 종종 있다.

이렇게 오해와 편견, 비관적인 감정은 우리 생활 속에서 자주 비치는 우리의 자화상 중 하나다. 사람을 흉보고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런 사람 주변을 보면 늘 충돌하고 시기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는다. 친하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당사자에게 말을 옮기는 것 또한 어리석은 행동이다. 더구나 그 비난이 다른 사람이 한 이야기일지라도 그의 귀에 들리는 것은 당신의 목소리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비관적이고, 어둡게만 보이는 현 세상. 한탄하고 남 탓을 하기보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전하며 밝은 날을 꿈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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