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남 희망의 책 대전본부이사장
[시론]

"2003년 겨울에, 또 조금만 더 쓰기로 작정을 하고 연필과 미수가루를 챙겨서 일본 교토 서쪽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왔습니다…."

2004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훈의 수상소감 '스스로 두려운 마음으로'의 서두부분이다. 이 글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단어는 다름 아닌 '연필'로 작가 김훈은 디지털의 시대에도 글을 아날로그시대의 유산인 연필로 쓰고 있다는 것을 수상소감에서 밝히고 있다. 1948년생인 이 작가는 우리 나이로 올해가 칠순이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데 스스로도 밝혔듯이 컴퓨터의 자판이 아닌,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쓰는 육필을 통해 창작 작업을 하고 있다. 치열한 정신작업의 소산인 픽션을 연필을 통한 '몸의 언어'로 풀어내는 지금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가 김훈이다.

19세기 전반기 빅토르 위고와 쌍벽을 이룬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 그는 온몸으로 글을 쓴 대표적인 작가라 할 수 있는데 그가 어떻게 글을 썼는지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보면 더한층 실감이 간다.

“…자정쯤, 하인은 여섯 개의 촛대에 불을 켜서 방안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친다. 일체의 빛도 소음도 틈입할 수 없는 글 감옥이 완성된다. 그는 작은 나무책상에 앉는다. 파리지엥이 침대에서 꿈을 꾸려 할 때 소설가는 책상에서 펜을 들었다. 책상에는 원고지 뭉치, 까마귀 깃털 펜, 잉크병, 메모용 수첩만이 놓여있다. …한 번 상상력에 불이 붙으면 발자크는 몽롱한 상태에서 산불이 바람을 타고 번져나가듯 미친 듯이 글을 써내려갔다.…"(조성관지음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 78쪽)

이 글에서 우리는 발자크라는 소설가가 원고지 위에 잉크로 찍은 펜을 통해 상상력을 글로 옮기는 과정이 실감나게 표현돼 있음을 보게 되고 육필 작업이야말로 다시 한 번 작가가 몸으로 쓰는 고된 작업이면서 동시에 작가가 하고 싶었던 '언어적 표현'임을 확인하게 된다.

지난 3월14일부터 오는 6월까지 대전문학관이 기획전시중인 ‘육필자료전-텍스트의 즐거움’이야말로 작가가 자신의 몸으로 직접 쓴 육필을 감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획전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전시는 대전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가운데 50여점을 소개하는 자리로 작가와 독자가 육필을 통해 서로 교감하고 더 나아가 작가의 정신을 만나는 ‘만남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모두 다섯 개의 주제로 세분화돼 있는데 첫 번째는 ‘과정의텍스트’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작가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육필원고다. 두 번째의 ‘완성의 텍스트’는 여러 과정을 거쳐 온전히 한 편의 글로 완성된 작품을 쓴 육필원고이며 세 번째 ‘교환의 텍스트’는 한 편의 완성된 육필원고가 누군가에게 전달된 메시지로 기능한 사례이며 네 번째 ‘환기의 텍스트’에서는 예술가의 몸으로 표현하고 몸의 움직임이 하나의 획이 되어 새로운 텍스트로 완성된 작품을 전시한 공간이다. 다섯 번째 ‘텍스트의 즐거움’은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전시공간으로 '퇴고하기-작품 창작하기-작품보내기-텍스트에 대한 느낌을 육필로 표현하기'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직접 쓴 내용을 상자 안에 넣는 그런 참여의 장이다.

디지털로 대변되는 지금의 시대 흐름 속에서 눈과 손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가다듬은 창작의욕을 직접 써보는 일은 몸으로 느끼는 희열을 선사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대전문학관의 육필자료전에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권유해본다. 아울러 이번 전시회에는 황순원, 박용래, 이재복, 김성동, 박목월, 이덕영, 김수남 등 대전지역 및 전국적으로도 이름이 난 문인들의 육필을 보는 신선한 기쁨도 맛볼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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