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철 충남도교육감
[아침마당]

인류 역사에서 민족의 이름으로 특정 식물이 가혹한 수난을 받은 것은 무궁화가 유일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가까이 하면 눈병과 피부병이 걸린다며 '눈의 피 꽃', '부스럼 꽃'이라는 누명을 씌워 멀리하게 했다. 1921년 9월 잡지 ‘개벽’에 실린 한용운의 옥중 시 '무궁화 심으과저'는 무궁화를 키우거나 노래하는 것조차 허락지 않던 시대의 아픔이 서려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 녯나라에 비춘 달아 / 쇠창을 넘어 와서 / 나의 마음 비춘 달아 / 계수나무 버혀 내고/무궁화를 심으과저"

나라마다 그 나라를 상징하는 나라꽃이 있다. 국화가 정해지는 것은 법으로 공식화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역사·문화적으로 관련이 깊은 꽃을 국화로 정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진 것은 법이나 제도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이라는 동요를 부르며 자랐고,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국가를 부르며 살고 있다. 이상희 작가는 저서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에서 무궁화의 생태적 특성이 우리의 민족정신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고 말한다.

옥토와 황무지를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뿌리내려 꽃을 피우는 무궁화는 동절기 외에는 어느 때 옮겨 심어도 잘 자란다. 5000년을 이어온 우리민족의 끈기와 무궁화의 생명력이 겹쳐진다. 대부분의 꽃들은 한꺼번에 피었다가 일시에 진다. 하지만 무궁화는 7월부터 넉달 가까이 피고 지기를 계속한다. 무궁화 꽃 한 송이는 이른 새벽 태양과 함께 피어나 저녁놀과 함께 하루 만에 지지만 다음날 아침, 새로운 태양을 맞아 새 꽃이 피어난다. 보통 크기의 나무가 하루에 50송이 정도의 꽃을 피운다고 하니, 100여일 동안 피운 꽃을 합치면 한해 5000여송이가 된다.

다른 화목과는 견줄 수 없는 긴 화기(花期)로 '무궁(無窮)'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식물에게 한여름의 더위는 혹한만큼이나 큰 시련이다.

꽃이 귀한 한여름, 그늘로 숨지 않고 꿋꿋하게 피어나는 무궁화를 '꽃의 소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무궁화는 꽃 지는 자리가 단정하다. 해질녘이면 꽃 피기 전 봉오리 모양으로 꽃잎을 오므려 꼭지 채 쏙 빠져나온다. 강인하고 단아한 것이 우리네 선조의 심성이다.

나무 심는 계절, 4월이다. 식목일을 맞이해 충남교육청은 무궁화동산을 만들고 있다. 사람의 왕래가 잦고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을 골라 땅을 일구고 묘목을 구입하다보니 '무궁화 동산'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고무줄 놀이하는 아이들과 함께 불렀을 남궁 억 선생이 생각난다. 모곡학교 교장으로서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고 교정에 무궁화를 심고, 시를 가르쳤던 남궁 억 선생. '무궁화동산 사건'으로 묘목 8만주가 불태워지고 투옥되는 바람에 조선 땅에 심지 못하고 국민들의 가슴에 심을 수밖에 없었던 그 꽃.

이제 우리가 가꾸어야 한다.

2017 나라사랑교육 추진 과제 중 하나로 '무궁무진 나라꽃 피우는 학교 만들기' 사업을 추진 중이다.

무궁화 묘목을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삼림청의 공문에 140개 학교가 희망했다. 우선 미선정교를 중심으로 3000만원을 지원해 식목일에 무궁화 묘목 식재를 실시하기로 했다.

앞으로 도내 모든 학교에 무궁화동산, 무궁화 등굣길을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가꿔 갈 것이다. 또한 외부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무궁화 묘목을 재배·보급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학교에 무궁화를 심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에 심는 것이고, 바위섬 독도에 무궁화를 새겨 넣는 것과 같다. 무궁화 등굣길을 만드는 것은 민주시민의 길, 통일조국의 길, 민족화합의 길을 내는 일이다.

나라꽃 피우는 학교, 무궁화 심으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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