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충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에세이]

봄기운이 피어오른다. 산에는 생강나무가 들에는 산수유가 노랗게 꽃망울을 터트렸다. 홍매화도 질세라 활짝 웃고 개나리도 기지개를 펴며 단장을 하고 있다. 앙상한 벚나무 가지에는 꽃망울이 벌써 자리를 잡았다. 희망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동토의 땅에 생명의 무지개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해안의 ‘맹골수도(孟骨水道)’에 침몰한 세월호도 2017년 3월 25일 1075일 만에 인양에 성공해 수면위로 올라왔다. 이날의 대참사는 국민의 뇌리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를 되뇌이게 했다. 국민들은 노란리본을 만들어 추모와 인양을 염원했다. 노란 꽃 봉우리들이 활짝 피어나자 어둠 속에 갇혀있던 세월호는 3년만에 기적같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날 하늘에는 노란 리본처럼 생긴 구름층이 발견돼 '우리의 염원이 하늘에 통했다'는 말들이 구전됐다.

차디차고 매서운 ‘동토(凍土)’의 계절에 봄기운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기지개를 켜고 대문을 나선다. 청주 무심천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옷차림도 가볍다. 봄기운을 시샘하는 찬바람과 시커먼 하늘 그리고 빗줄기 사람들의 발길을 막아서지 못한다. 서문대교 근처 롤러스케이트장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곳에서 청주시체육회와 충청투데이가 주최하는 '2017 직지사랑 클린워킹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자원봉사자들, 학생들, 일반시민들이 다가온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여든다. 청주아리울봉사단원들은 벌써 물로 들어가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한다. 태권동자들은 땅과 공중에서 그간 수련한 기개를 펼쳐 보인다. 그 모습에 세월의 흐름에 묻혀 지냈던 젊음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도내 기관단체장들이 하나·둘 얼굴을 나타낸다. 이시종 충북도지사. 김양희 충북도의회 의장, 이승훈 청주시장, 황영호 청주시의회 의장 등등등….

행사를 주최하는 성기선 충청투데이 충북본사 사장은 이 행사는 청주시체육회와 함께하는 행사인데 도지사님이 오셨으니 누구에게 먼저 축사를 부탁드려야하나 고민을 한다. 그리곤 주요 인사를 모시고 단상에 오른 후 청주시장에게 먼저 축사를 부탁했다. 아래에서는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청주시 행사라도 당연히 도지사가 먼저해야 한다. 아니다. 주최가 청주시니 청주시가 먼저다.' 기관장을 모시고 나온 공보팀들은 좌불안석이다. 모 인사가 의전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인천에서 기관장을 할 때 의전문제 때문에 매우 곤란한 적이 있었다. 의료관련 행사에 모 인천시장과 모 국회부의장을 초청했는데 서로 경쟁자이다 보니, 누구를 상석에 준비하는가에 대해 서로 양보하지 않아 매우 곤란했다. 결국 국가의전 서열에 준해 국회부의장을 상석에 준비했다"고 한다. 충북에서도 한때 도의회 의장이 먼저냐 도교육감이 먼저냐는 의전싸움이 심심찮게 회자되곤 했다.

행사의 그늘 막 속에는 각자가 모셔온 분의 역할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전혈투가 벌어지곤 한다. 행사가 잘 마무리되면 그늘에 태양이 뜨고, 잘못 꼬이면 더 짙은 구름 속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봄기운과 더불어 바야흐로 행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축사를 없앨 수 없다면 좀 더 원칙적이고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 갇혀있던 세월호도 올라오고, 생명의 희망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던 동토의 땅에서도 새 생명이 올라왔다. 행사장의 그늘 막에도 초조함보다는 웃음이 있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 세상! 그 모습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행사, 의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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