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전지역본부장
[아침마당]

얼굴에 비치는 따스한 햇살과 길가에 핀 백목련의 예쁜 자태를 보니 봄이 성큼 다가옴을 느낀다. 우리가 느끼는 이 봄의 따스함과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해 있는 중증 및 희귀난치병 질환자나 바이러스에 취약해 집밖으로 나올 수 없는 어린이와 가족들이다. 우리의 헌법, 보건의료기본법, 세계인권선언,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국제법 및 국내법에서는 국가가 아동의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해야 함을 천명하고 있음에도 중증, 희귀난치성 질환 환아 가정은 병원비를 비롯한 각종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동은 중복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약 30%에 이르렀고, 단일질환 중 4대 중증질환(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에 해당하는 진단을 받지 못한 기타질환의 경우가 약 20%로 나타나 사각지대에 놓인 가구가 많음을 짐작케 한다. 아동의 연평균 의료비는 2476만 5000원으로, 이 중 입원병원비가 1032만 4000원을 차지해 가장 부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의 진단 이전과 이후 가구의 경제적 변화를 살펴보면 소득은 감소했으나, 높은 의료비 지출의 부담으로 인해 다른 생활비 항목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삶의 질의 하락이 예상됐다. 또한 환아 간병으로 인해 고용은 무직 또는 일용직이 증가했고, 주거는 월세가 증가해 고용과 주거 모두 불안정한 상태로 하락하고, 수급권 가구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은 치료 관계로 학령기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20%며, 친구가 전혀 없는 경우도 30%나 됐다. 환아 가족은 건강과 여가, 돌봄 등에서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꾸만 쌓여 퇴원을 해도 끝나지 않는 병원비 부담, 24시간 간호가 필요한 아이들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져 가는 보호자, 받기도 어렵고 받아도 체감하기에는 부족한 정부지원, 안할 수도 없는 비급여 의료비, 오늘만 잘 살자며 무사히 넘긴 하루에 안도하며 그 속에서 찾은 위안과 희망이 환아 가족들의 삶이자 욕구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의료보장 정책들은 환아 가족을 빈곤위험으로부터 예방하지 못하고 있다. 가계에 과도한 의료비 부담과 그로 인한 빈곤화 과정을 예방하기 위해선 우선 정부는 건강보험제도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는 어린이병원비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전환이 필요하고, 입원비 및 외래진료비를 건강보험제도에서 보장을 강화하는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민간기관의 경우 중증, 희귀난치성질환자는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을 이용하고 있어 직접 의료비 이외에 교통비, 숙박비 등의 부대비용과 퇴원 후 집안에서 보호자가 제공받는 간병에 소요되는 의료기구나 의료용품 등의 제공 노력과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치료 과정에서 24시간 간호에 매달리며 경제적 압박까지 감당해야 하는 보호자들의 정서적인 문제와 아동기의 필수적인 사회·정서적 발달환경의 상당부분을 제한받고 있는 환아들의 심리적인 변화과정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어느 환아 어머니의 한 서린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 아이가 희귀질환에 걸릴 줄 몰랐다. 병을 진단받고도 투병기간이 이렇게 긴 시간이랴 생각하지 못했다. 병원비 및 의료용품이 이렇게 비싸고 국가가 이렇게 무관심할 줄 몰랐으며, 아이가 아프면서 오는 어려움은 오로지 우리 가족의 몫이었다. 아이가 아프면 가족 모두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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