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전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시선]

가시고기 암컷은 알을 낳자마자 매정하게 떠나가 버린다. 그러면 수컷이 남아서 알을 돌본다. 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주변을 떠나지 않고 지느러미로 쉬지 않고 물질을 한다. 외부의 침입자도 막고….

그러다보면 수컷 가시고기는 힘이 빠져 점점 지쳐버린다. 이때 알에서 깨어난 새끼 고기들은 지쳐있는 아빠의 살을 먹으며 성장한다. 결국 아빠 가시고기는 앙상한 가시만 남아 물결에 떠다니는 신세가 되고 만다. '가시고기'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여진 것.

이와는 반대로 엄마 가물치는 알을 낳으면 산고(産苦)로 시력을 잃어 먹이 사냥을 못한다. 그러나 부화된 새끼들이 어미 입 속으로 들어가 엄마의 먹잇감이 된다. 그래서 수천 마리 새끼를 낳지만 생존하는 것은 10분의 1도 안된다.

물고기 뿐 아니라 이처럼 자식을 위한 희생, 부모를 위한 희생의 모범이 되는 동물은 흔하다. 하물며 인간에게서야 어떻겠는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가족의 붕괴, 특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바로 그 '효'가 심각하게 사라져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어쩌면 효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윤리적 가치로 자리매김해 온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효의 붕괴현상은 오늘날 우리의 혼탁한 사회현상의 원인일 수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느끼질 못하지만 세계 석학들이 보는 우리의 효 문화는 뜨거운 감동, 그것이었다. '25시'의 작가로 너무나 유명한 게오르규는 1974년 우리나라를 다녀가서 "21세기 한국의 효중심 전통문화가 체계화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 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세계가 한국의 효문화를 받아들여야 정신적 방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발전을 '도전과 응전'으로 해석한 세계적 역사학자 토인비는 "죽을 때 가지고 갈 것을 묻는다면 효의 정신이 흐르는 한국의 가족제도라고 까지 우리의 효 문화를 극찬했다." 뿐만아니라 그는 한국이 미래의 인류사회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 있다면 효 사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세계 석학들이 정신문화의 보석처럼 평가한 우리의 효 사상, 그리고 가족제도가 급속한 산업사회로의 전환, 치열한 경쟁사회의 역기능으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 출산율의 절벽으로 어쩔 수 없이 노인들을 요양원으로 추방하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 대전시 중구 뿌리공원 내에 건축 중이던 '효문화진흥원'이 마침내 준공되어 3월 31일 개원식을 갖게 되었음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공모사업으로 추진하던 효 진흥원을 대전시와 유관기관, 시민단체 등이 총동원되어 유치운동을 벌였고 2012년 대전으로 결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는데, 이제 그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지하1층, 지상3층에 다섯 개의 전시실, 4백석 규모의 강당, 연구실, 강의실이 갖추어져 있는데 다양한 조형물과 체험코너 등이 첨단 시스템과 융합되어 특히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 주변은 전국 유일의 뿌리공원 등 효 관련 시설들이 있어 효의 분위기마저 한껏 높여주고 있다.

권선택 대전시장이 최근 효문화진흥원의 개원을 계기로 대전이 명실공히 붕괴되고 있는 효 사상을 일으키는 메카로서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더 나아가 토인비가 예언한대로 위기에 처한 미래 인류사회의 정신적 에너지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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