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 호주 시드니 술없는 거리 표지판. 사진=이규식
빙허 현진건 선생이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를 1921년 '개벽'지에 발표한지 100년이 가까워온다. 주인공이 허구한 날 술을 마시며 느끼는 현실에 대한 저항감과 고뇌가 일정 부분 유사하기 때문일 수 있겠다.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번민과 방황, 가정사에 대한 불만이 주인공을 술로 이끈다는 설정은 한 세기를 훌쩍 넘어 지금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손쉬운 도피 방편인 술에 대해 우리사회는 대체로 관대하였다. 요즘에는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재판형량에서도 '주취' 상태를 참작하는 등 술로 인한 일탈을 더욱 엄중히 처벌하지 못했던 사회분위기는 우리나라가 술을 바라보는 전통을 비춰준다.

외국의 경우 알코올류를 판매하는 상점에 대하여 면허발급 등으로 별도로 관리하는 반면 우리는 거의 모든 상점에서 주류를 판매한다. 미성년자에게 주류 판매를 제한하고는 있지만 그리 엄격히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이제는 술 소비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규제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 이른 듯하다. 그 첫 단계로 술 없는 거리, 음주 금지구역 운영이 꼽힌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나 에펠탑 근처 샹 드 마르스 지역에서는 일정시간 음주행위가 금지된다. 카페나 바가 문을 닫는 시간이 되면 술병을 든 젊은이 또는 주취자가 거리에서 음주를 하는 행위를 단속하여 벌금을 부과하는데 이런 이름난 지역이 아니더라도 세계 곳곳에는 특정지역을 '알코올 프리 존'으로 설정하여 도시미관과 치안, 환경보호 그리고 야간정숙 등 여러 측면의 효과를 올리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와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술 소비량 증가와 이로 인한 유·무형의 소모적이며 부정적인 현상이 불거지는 현실에서 청소년 출입이 빈번한 곳, 주택가와 사무실 밀집지대, 문화재와 미관보호 구역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희망하는 지역 등에 대하여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쳐 음주금지조치를 확대하는 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할 듯 싶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고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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