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 국가핵융합연구소장
[아침마당]

‘파리기후변화협약’이 미국의 새로운 정권의 등장과 함께 풍전등화를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환경 규제 철패를 위한 행정명령을 준비하고 있으며 파리기후변화협약(COP21)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하기에는 난관이 많다.

존슨앤드존슨과 켈로그, 제너럴 밀 등 630여개 미국 기업과 투자사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트럼프에게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파기하겠다고 한 공약을 재고해 줄 것을 촉구했다.

기업과 언론,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트럼프의 정책에 대해 강력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기후협약이 오랫동안 발전됐온 논의의 결과물이며, 우리가 터전을 이뤄 살아가고 있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정권이 바뀌면 정책 방향도 함께 바뀌는 현상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기후변화 협약처럼 세계가 공동으로 협의한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문제 뿐 아니라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세계는 공동으로 인류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핵융합에너지 개발이다. 핵융합 연구는 기후변화 저지를 위한 노력 중 하나로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적이며 무한한 미래에너지원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 1895년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간 ‘핵융합 연구개발 추진에 관한 공동성명’으로 시작된 지금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공동개발사업은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국제협력의 구심점이다. ITER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 중국, 인도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7개 회원국은 2006년 ITER공동이행협정의 체결 이후 ITER의 성공을 위한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ITER의 건설 뿐 아니라 향후 운영까지 30년 이상 계속되는 장기 공동 프로젝트다.

이러한 장기 과학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기반이 됐야 하는 것은 회원국들의 흔들림 없는 협력일 것이다. 국제 공동 프로젝트인 만큼 ITER 회원국 모두는 사업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핵융합 연구는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볼 때 결국 ITER의 성공은 회원국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회원국 정부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핵융합연구 정책을 이어갈 때 ITER의 성공, 그리고 핵융합 상용화 시대를 열 수 있는 것이다.

일관성 있는 과학기술 정책은 성공적인 연구 성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나라 핵융합 연구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핵융합연구 후발주자에 속하지만, 일관된 정부의 정책 아래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1995년에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인 KSTAR의 개발로 본격적인 핵융합 연구를 시작해 20여 년 동안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핵융합에너지 개발을 위한 변함없는 정책을 이어왔다. 환경과 에너지가 중요한 미래 이슈이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핵융합에너지가 가진 거대한 잠재력 때문일 것이다.

이런 꾸준한 관심과 지원 덕분에 국내에서 개발한 핵융합장치 KSTAR는 매해 세계 최고 연구 성과를 갱신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그 기술을 인정받아 ITER 사업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국내 연구진들이 ITER 사업에서 주요 보직을 도맡으며 세계 핵융합연구를 최전방에서 이끌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국가의 관심과 흔들리지 않는 정책적 방향, 연구진들의 노력이 더해져서 얻을 수 있었다.

기후변화 문제나 핵융합에너지 개발과 같은 인류의 미래를 담보로 하는 문제는 한 나라나 특정 그룹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국내외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도 기후변화나 핵융합개발과 같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공동으로 협력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흔들림 없는 협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국가 정책이 유지될 수 있을 때 우리가 꿈꾸는 깨끗한 지구, 풍부한 에너지원이 함께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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