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충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에세이]

아무도 오르지 않은 산길을 따라 숨을 헐떡인다. 한발 한발 내 디딜 적마다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길가에 자리 잡은 초록의 조릿대 위에 하얀 눈이 솜이불처럼 덮여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상고대가 보기 좋게 피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승무의 춤사위를 연상시킨다. 햇살이 비치니 사방이 온통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속리산 최고봉 천왕봉(天王峰 1058m)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에메랄드 빛 하늘 아래 백두대간 산줄기가 북에서 남으로 굽이쳐 흐른다. 서쪽으로는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S자 형태를 그리며 흘러간다. 한강과 금강, 낙동강의 물줄기가 선명하게 나뉘어진다. 기암절벽이 꽃으로 피어나면서 자색으로 빛난다.

장엄한 광경에 넉이 빠져있는 사이 속리산 국립공원 직원이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천왕봉으로 올라왔다. 우리가 탐사해야 할 구간이 비 법정 탐방로라 들어 갈수 없는 곳이다. 어쩔 수 없이 갈목재까지 가려던 계획을 수정해 입구만 들어가 보기로 했다. 국립공원 직원의 안내로 접어들었다. 아직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라 능선길은 좁았지만 선명하게 길이 나있다.

좌측으로는 금강, 우측으로는 한강으로 흐르는 마루금을 걷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천왕봉으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와 정상에서서 바라보니 이곳 속리산이 지도상 남한의 중심이며 백두대간의 중간이다. 사람으로 이해하면 심장에 해당하며 3대강의 물줄기를 나누며 공급하는 곳이다. 물줄기가 삼태극을 그리는 공간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이다. 백두산(2744m)에서 발현한 민족정기가 숨을 고르며 충북의 중심으로 흘러가는 곳이다. 천왕봉이 청정지역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천왕봉 오름길에는 두 개의 암자가 있는데 상환암과 상고암이다. 상환암(上歡庵)은 사찰 앞에 학이 둥지를 쳤다는 학소대가 있다. 그 아래 계곡에서 은폭동(隱瀑洞)이 있는데 폭포소리는 들리나 폭포는 보이지 않는 신비스런 곳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즉위 전에 100일기도를 드렸다는 전설이 있다. 상고암(上庫庵)은 약 850m에 위치한 암자다. 사찰윗부분에 전망대가 있는데 문장대부터 비로봉까지 장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속리산이 왜 제2의 금강으로 불렸는지 알 수 있다. 백두대간이 바위 꽃으로 피어난 구간으로 낙조 때 바위 빛깔이 자색으로 변한다. 내림길에 천년송이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밑으로 내려오면 비로산장이 있다. 1965년 신축된 산장은 한때 산악인들의 보금자리로 저명인사들의 휴식장소로 이용되던 곳이다. 지금은 세 명의 딸들이 관리를 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설 연휴 속리산 천왕봉을 찾은 이유는 2017년 한 해 한남금북정맥을 탐사하기 위해서다. 충북의 기상이 모아지고 또 나누어지는 곳이다. 금강과 한강유역을 나누는 한남금북정맥은 충북의 기상을 모아 백두산을 넘어 대륙으로 발현시키며, 대륙의 기상은 다시 충북의 내면 깊숙이 들어와 충북인의 자긍심을 심어준다. 충북의 역사와 문화의 구획지이자 통로가 되는 한남금북정맥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바라보고 그것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이 충북의 정신을 함양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번 탐사를 통해 충북에서의 한남금북정맥의 역할과 중요성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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