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기반표준본부장
[시론]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그 변화가 더 빨라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높이 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절대 불멸의 종교에 귀의하며, 절대 진리의 학문을 추구한다. 또 영원한 우정을 높이 사며, 변하지 않는 사랑을 찬미한다.

불변의 대명사인 다이아몬드가 결혼하는 부부의 예물이 되는 것도 부부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소중하듯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변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있어야, 다른 변하는 것들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변하지 않는 것, 그래서 다른 것들의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표준이라 할 수 있다. 표준이라고 정의되는 측정의 기준이 명확해야 과학기술이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에서 측정한 1초는 미국에서 측정된 1초와 같아야 하며, 오늘 측정된 1m는 어제 측정된 1m와 같아야 한다.

사회의 기준인 법이 사회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듯 과학기술의 기준인 표준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했다. 19세기는 길이(미터·m), 질량(킬로그램·㎏), 시간(초·s)이라는 3개의 기본 단위만 존재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3개의 단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발견됐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46년에는 전류(암페어·A)의 단위가 추가됐다. 이 후 단위의 확장은 계속됐고, 1971년까지 온도(켈빈·K), 광도(칸델라·cd), 물질량(몰·mol)의 3개 단위가 더해져 현재 총 7개의 기본 단위로 표준이 구성돼 있다.

7개의 기본 단위 각각의 기준값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값을 정의하는 방법은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꾸준히 변했다. 길이 1m를 처음 정할 때는 지구의 둘레를 기준으로 했다. 즉 지구 적도에서 북극까지의 거리를 1만m로 하며, 역으로 이 거리의 1만분의 1을 1m로 정했다. 이렇게 결정된 1m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막대로 만들어 ‘국제 미터원기’로 삼았다. 이것이 최초의 길이 표준이었다. 이후 과학의 발전에 따라 보다 정확하고 변하지 않는 방법으로 길이 1m의 정의를 바꾸어갔다. 1960년에는 크립톤-86 원자에서 발생하는 복사선의 파장을 기준으로 길이를 정의했으며, 1983년부터는 진공 속에서 빛의 속도를 이용해 길이 1m를 정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길이뿐만 아니라 다른 단위의 정의도 계속 변화하며 발전해 왔다. 7개의 단위 중 질량 표준은 현재도 초기의 길이 표준과 비슷하게 금속 합금으로 만들어진 ‘국제 킬로그램원기’로 정의돼 있고, 인공물의 변화에 따라 질량의 기준값 역시 필연적으로 변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질량을 정의할 수 있는 연구들이 수행됐으며 그 결과 2018년에 새로운 정의로 바뀔 예정이다.

표준의 변천사에서 알 수 있듯이, 표준의 정의는 끊임없이 변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그러한 정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표준을 보다 정확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즉 변하지 않는 표준을 만들기 위해 그 수단은 끊임없이 발전하며 변해왔다. 표준의 발전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필연적 관계에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 정확한 표준이 필요하며 새로운 표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역으로, 표준의 정의를 위해 개발된 기술은 다른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을 이끌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표준을 위해 표준의 정의는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며, 이는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기만 하는 입장이었으나 이제는 선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야 할 때다.

국제적으로 표준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충분한 과학기술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의 역량을 통해 국제 표준의 정의를 바꿀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가 세계 과학기술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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