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봉 대전시립미술관장
[목요세평]

모든 것이 급변하고 생산성이 미덕인 사회에서 빠른 속도의 발걸음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이런 세태와는 상반되는 느림보 미학으로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가 있다.

바로 중국의 인터넷 매체인 티브 유큐에서 '무엇이 아름다운가'라는 주제로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에 예술영화 감독인 차이밍량이다. 그의 2010년 작품인 '행자(Walker)'에서는 홍콩의 침사추이를 배경으로 붉은 법의의 승려로 분한 이강생이 등장한다. 승려는 고개를 수그린 채 양손에 각각 빵과 다른 먹거리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간다. 승려는 빠르게 움직이는 배경에서 아주 천천히 걸음을 떼고 있다. 그의 걸음은 한걸음을 떼는데 2~30초의 시간이 걸릴 정도로 슬로우모션으로 걷고 있다.

버스와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대로변에서도, 많은 군중들이 모여 저마다의 행선지로 향하는 번화가에서도, 지하철 이용객들이 빠져나간 후 텅 빈 공간을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 청소부들도, 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슬로우모션 걸음은 지속되고 있는데, 그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편 사람들이 멈춰 서서 승려를 둘러싸고 그의 도보를 자세히 구경하기도 한다.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으로 아무도 없는 외진공간에 이르러서야 승려는 비로소 빵을 한입 베어 물고 이내 작은 미소가 승려의 입가에 머문다. 아무런 대사 없이 대비되는 화면의 영상은 관객의 시선을 정지시킨다. 차이밍량의 ‘행자’는 홍콩이라는 도시의 빠른 리듬과 일용할 양식을 사서 귀가하는 승려의 느린 걸음을 대비시킴으로서 삶과 아름다움에 대한 문구를 새삼 환기하고 있다.

우리가 걷는 걸음걸이와 생각들이 내달려간 삶의 모습은 과연 아름다운가에 대해 영화 평론가 정성일과의 대담에서 챠이밍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어떤게 또 행복입니까? 그리고 또 어떤게 인내심 입니까?” 그의 영화에서는 대화를 찾아 볼 수가 없다. 간혹 지나가는 차의 경적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렇기에 작품을 감상하는데도 많은 인내심이 요구된다.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에 대해 차이밍량의 '행자'는 아름다움을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내듯 이미지로 표현했다.그리고 극단적 느림을 독특한 영화 미학으로 탐구하는 실험적인 성격을 지닌다. ‘아름다운 순간’ 전시는 이러한 미학적 키워드를 가지고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아름다움을 그리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챠이밍량의 '행자'의 영상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지내면서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놓치고 살 때가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느림보 걸음을 걸어보자.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 놓자. 지금 이 아름다운 순간은 이내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것보다 기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감독의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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