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 수필가
[에세이]

소식이 없던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씩씩하던 평소의 목소리와 다르게 다 죽어가는 목소리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 다그치듯 재차 묻자 그녀는 말 대신 왈칵 울음을 토해냈다. 가까스로 그녀를 진정시키고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 앞에 앉았다.

몇 달 만에 만난 그녀의 얼굴은 초췌하고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며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었다. 맨 정신으로는 꽁꽁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을 끄집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멀쩡하던 닭들이 하루아침에 죽임을 당해 땅 속에 묻히는데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어."

나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지만, 확인하고 싶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퀭한 눈을 들어 “우리 인근 마을에 있는 닭들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려 멀쩡한 우리 닭까지 살처분 당했어”라며 눈물을 흘렸다. 충격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혀가 굳어져 그 어떤 말도 꺼낼 낼 수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희망이 꺾인 어깨에서 냉기가 느껴졌다.

지난해 10월 말경 야생 조류에서 발생한 AI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퍼져 사상 최악의 피해를 주었다. 연일 뉴스에서 살처분 당하는 닭과 오리에 가슴이 서늘했지만, 설마 그녀의 농장까지 피해갈 줄은 몰랐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AI 발생농가 3㎞ 반경 안에서 양계하고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살처분 당했다니 너무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다. 그녀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

"외국에서는 AI 발생 농가에서만 살처분 하고 반경 3㎞ 안에선 모니터링을 하며 지켜본다는데 왜 우리나라에선 병에 걸리지도 않은 닭들을 생으로 죽이는지 모르겠어. 이것은 가금류 농가들도 함께 죽으라는 거야. 생명을 우습게 아는 거지."

할 말이 없었다. 사실 AI는 매년 겨울철마다 발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만 유독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만약에 병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 대책이 실행됐다면 이번과 같은 심각한 사태에 이르지 않았으리라. 이번에 창궐한 H5N6형 AI 바이러스는 10월 28일 천안 봉강천에서 모 대학이 연구 목적으로 채취한 야생원앙 분변에서 최초로 발견됐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 간 긴밀한 소통과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마련되지 않아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퍼져 통제 불능상태가 됐다. 안전지대로 여겼던 일부 동물복지농장, 동물원까지 피해를 보았다.

산란 닭이 줄어들어 달걀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농가에선 도축해야 할 노계의 생명을 연장해 알 생산을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농가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생산 능력이 없는 닭을 억지로 굶기고 회춘(환우換羽)시켜 알을 생산토록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태도일 수밖에 없다.

가금류의 떼죽음은 사람의 생명마저 위협당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건강한 가축을 키우는 것은 건강한 밥상을 위한 것이다. 동물들도 마땅히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최적한 환경 조성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공생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며 오염된 지구를 살리는 일이다. 닭의 해가 밝았다. ‘지리멸렬(支離滅裂)’했던 과거를 벗고 힘차게 도약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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