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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론]
김갑중 을지대병원 정형외과 교수·진료협력센터장

인간의 몸은 수도 없이 많은 기관들로 구성돼 있다. 그 기관들은 각각의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 독특한 기능의 유기적인 조합에 의해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필자는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뼈와 근육의 외상 및 질환을 치료하는 정형외과를 전공했으며, 그 중 발(足)과 발목의 외상 및 질환, 뼈와 근육에 발생하는 종양을 연구하는 근골격계 종양학을 세부 전공했다.

오늘은 필자의 전공 분야 중 한 기관인 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생활수준과 소득이 낮았던 시절 사람들은 발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발의 기능에 불편함을 안고 지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발이 좀 불편해도 그냥 받아들이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여기며 지냈던 것이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소득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삶의 질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이전에 별 관심이 없이 지냈던 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영역에서도 발과 발목을 연구하는 의사들이 모임이 만들어졌고, 서로의 치료 경험 등을 공유하고 발표하는 학회가 설립되기도 했다. 지금은 정형외과 영역에서 발과 발목을 전공하는 의사들의 학회는 다른 학회보다 역사가 짧긴 하지만, 구성원 수는 타 학회에 뒤처지지 않게 많아졌다. 발의 건강과 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발’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냄새’가 아닐까 싶다. 또 제때 씻지 않으면 더럽다고 여기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발은 구조와 기능이 매우 복잡하고 섬세하다. 수술을 하는 정형외과 의사 입장에서도 발에는 근육들이 매우 많고, 다수의 뼈, 관절, 근육, 인대, 혈관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수술 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인체의 최하단에 위치하면서 우리 몸무게의 3~7배의 하중을 받고 있는 고마운 기관이기도 하다.

몇 해 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씨와 대한민국 프리미어 리그 1호인 축구선수 박지성 선수의 발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적이 있다.

먼저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발은 필자에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발가락 5개 모두 다수의 골극 형성과 골성 변형이 일어났으며, 발을 구성하는 매 관절마다 다수의 굳은살이 있었고 발톱은 여성의 발톱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그 모양이 심하게 변형된 모습이었다. 무대에서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는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모습과 발의 모습은 쉽게 매칭이 되지 않았다. 기사에 의하면 강수진 씨는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토슈즈를 신고 하루에 18시간씩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에 몰두했다고 한다. 가히 그 노력에 대해 어떤 존경을 표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대한민국 프리미어리그 1호인 축구선수 박지성 선수의 발은 또 어떠한가. 박지성 선수의 발도 역시 온갖 풍파를 다 겪은 듯한 모습이었으며, 의학적으로는 발바닥의 아치가 없는 평발의 모습이었다. 과거 평발인 청년들은 군 입대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축구선수로 신체 조건이 월등한 서양 선수들을 제치고 그라운드를 누비기에는 보잘 것 없이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성 선수가 세계 최고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축구화 속에 숨겨진 박지성 선수의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발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이처럼 발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든든하고 우직한 녀석이다. 연극배우들로 비유하자면, 주연 배우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뒤에서 묵묵히 주연 배우를 돋보이게 만드는 감칠맛 나는 조연 배우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새해부터는 우리 모두가 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발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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