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닭은 새였다. 5000년 전까지만 해도 훨훨 날아다녔다. 독수리처럼 창공을 날아 들쥐를 낚아채던 새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동안 날갯짓을 하지 않아 나는 법을 까먹었다. 더구나 인간이 던져주는 모이에 길들여져 가금(家禽) 신세가 됐다. 닭의 평균 수명은 10년이다. 하지만 보통 35일만 지나면 치킨집(육계)으로 팔려나간다. 생애의 1%도 못살아보고 죽임을 당한다. 살벌한 요절이다. 닭은 야맹증 환자다. 깜깜하면 뵈는 것이 없다. 빛에도 민감하다. 인간의 감지능력을 뛰어넘어 눈과 피부로 빛을 알아채는데, 그때 울음을 터뜨린다. 어둠을 뚫고 아침을 여는 울음소리는 상서로운 서조(瑞鳥)여서가 아니라 온전히 빛 때문이다. 새벽 1시 첫울음이 터지면 제사를 올리고 새벽 5시 울음이 터지면 하루를 여는 시보(時報)는 알고 보면 엉터리다.

▶닭은 버릴 게 없다. 튀겨서, 삶아서, 쪄서, 볶아서, 데쳐서, 구워서 먹는다. 뼈는 푹 과서 육수를 내고, 발은 양념닭발로 변신한다. 종교·문화·인종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 가축도 닭밖에 없다. 한국인 1명이 1년에 닭고기 15.4㎏을 먹는다. 1인당 예닐곱 마리를 먹어치우는 셈이다. 계란도 무지막지하게 먹는다. 암탉 1마리가 연간 180개의 알을 낳는데 우린 두당 254개(年)를 먹는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다. 술 주(酒) 자에도 '닭'의 은근한 배려가 숨어있다. 닭(酉)이 물(水)을 먹는 것처럼 천천히 마시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정작 닭띠 해가 왔는데 '닭'은 슬프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3000만 마리가 생매장됐다. 닭의 비애는 치킨집 사장에게도 이어진다. 월세·재료·인건비만 월 2000만원이 나간다. 치킨 한 마리를 1만7000원에 팔면 생닭 값과 광고비가 5400원이다. 소스와 포장박스비, 튀김용 기름 값은 별도로 1000원이다. 택배에게 배달을 맡기면 한 마리 당 2500원을 줘야 한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3000원이다. 한해 평균 7400개의 치킨집이 새로 생기고 5000여개가 문을 닫는다. 10명 중 7명은 5년 내 폐업한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를 고용한 노동자'라고 푸념한다. 닭집도 슬프다.

▶'닭대가리'는 아둔한 사람을 놀릴 때 쓴다. (믿거나말거나) 기억력이 3초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닭은 24개의 울음소리로 소통한다. 4000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왔기에 사람 10명은 분간한다. 그러니 닭대가리가 아니다. 닭만도 못한 인간이 닭대가리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자가 닭대가리다. 2016년(丙申年)은 어둠을 만든 농단의 인간들 때문에 말 그대로 '병신년'이었다. 모두들 절망에 빠진 새벽을 살았다. 이제 붉은 닭의 해가 왔다. 닭울음소리(계명·鷄鳴)는 개벽으로 환치된다. 계륵(鷄肋) 타령은 필요 없다. 우리는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철저하게 가려내야한다. 닭의 모가지를 비트는 한이 있어도, 나라를 농락한 자들을 버려야한다. 찬란한 아침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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