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석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장
50년간 대한민국 과학기술 진일보, 효율·경쟁 우선주의 과학계 멍들어
다양성·자율성 보장 연구풍토 필요, 출연연 ‘기타공공기관’ 지정 바꿀것

▲ 양수석 출연연 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장이 자신이 근무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사무실에서 2017년 출연연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정재훈 기자 jjh119@cctoday.co.kr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출범한 지 51년, 대덕연구단지가 준공되고 출연연이 대전에서 둥지를 트고 활동한 지는 25년이 지났다.

그동안 과학계는 국가 발전을 위해 수많은 기술과 성과를 도출했다. 충청투데이는 정유년을 맞아 1월 1일 출연연 연구자들의 새로운 수장으로 부임한 양수석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장(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을 만나 출연연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묻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현재 한국은 촛불의 거대한 힘으로 정치계에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과학계도 2017년도에는 이 변화와 혁신의 물결을 거슬러 갈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7년에는 대선이 치러지는 해이므로, 대한민국의 과학 정책에 대한 여러 가지 제안들이 과학 관련 개인 및 단체들을 통해 각 당의 대선 캠프에 전달되고 발표될 것입니다.”

1월 1일, 출연연 연구자들의 수장으로 부임한 양수석 출연연 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장은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촛불집회와 대선으로 인해 과학계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과학계 변화에 대해 ‘자율’을 강조하며 과학계 내부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수석 회장은 “과거 군사정부를 비롯해 민주화 이후의 여러 정부에서도 변화와 혁신이라는 화두는 항상 타율적으로, 그리고 정부주도로 행해 왔기 때문에 큰 힘을 발휘하지를 못했다”며 “외형적인 변화와 혁신은 있었지만,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 대표적인 것이 경쟁을 위한 PBS제도의 도입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변화와 혁신은 지금의 촛불과 같이 자율적인, 그리고 연구현장에서 요구되는 목소리가 반영되는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계가 진정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출연연 혁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선도형 연구로의 전향에 동의하며 방향 전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양 회장은 “1966년을 시작으로 지난 50년간 출연연은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을 선도해 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국내 산업의 기술이 외국보다 낙후된 상황에서 선진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연구원 모두가 노력해 많은 산업 분야에서 우리의 기술력이 외국을 앞서고 있는 기술의 고도화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의 과학 기술은 추격형에서 벗어나 선도형(First Mover) 연구로 전환되어야 하며 최근 몇 년간 정부를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선도형 연구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며 “최근 출연연에서도 내부적인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각 기관의 부원장급으로 구성된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혁신안을 마련하고 공청회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의 연구 형태에서 벗어나 프론티어형 연구와 문제해결형 솔루션 연구를 지향하겠다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을 통해 선진국이 하고 있지 않은 미래 선도적인 연구를 통해 기술 선진국의 최전선을 담당하겠다는 것과 기후, 지진 등 공공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을 맡겠다는 방향 전환은 시기적절하다고 생각된다”며 “다만 출연연의 미션이 재정립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의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되고 난 후에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정감사를 비롯해 출연연의 단골 과제인 ‘연구 자율성’에 대해서는 생태계 다양성의 중요성과 연구 환경을 비교하며 자율성 보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양 회장은 “자연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다양한 종들이 살아 숨 쉬고 보존돼야 하며 연구 생태계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연구자들에 의해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이것에 대해 그 효용성을 따지기 전에 그 보존 가치를 인정해주고 지원해주는 연구 풍토가 매우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한국의 연구생태계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유행을 좇아가는 연구’라고 꼽았다. 그는 “나노, 바이오, IT, 로봇, 인공지능 등 연구가 언론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 정부는 앞다투어 관련 연구 예산을 편성해 한쪽으로 편중되고, 연구자들은 자기의 전공분야와는 상관없이 그 분야의 연구에 발을 들여놓고 제안서를 쓰고 과제를 수주한다”며 “빠른 유행에 따라가는 기술은 우리나라의 산업체도 이제는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산업체 주도 혹은 기업의 연구자금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출연연의 연구 자율성이 정부의 관리 주도하에 ‘효율성’과 ‘경쟁’의 유입으로 변질됐다고 우려를 표하며 이런 점은 앞으로 고쳐져야 할 문제로 봤다.

그는 “과거 연구현장의 연구원들은 연구를 좋아서 하고 재미있어하며 밤이 새도 모르게 일을 했지만 정부가 효율성과 경쟁을 유도하자 관리의 틀 속에 정형화되고 평가에 적합한 단기적인 성과 내기에 급급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며 “연구자 스스로 자율에 의해 몰입할 수 있는 연구환경을 만들어야 장기적인 측면에서 효율적인 연구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연구원의 경쟁을 유도키 위한 PBS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효과가 더 많다고 언급하며 새해에는 이런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양 회장은 “PBS제도는 연구자들을 경쟁의 세계로 내몰며 우수한 연구자와 결과를 만든 것이 아닌 연구과제 전문 수주꾼을 양산하는 데 그쳤다”며 “연구현장에서 연구에 전념해야 할 책임연구원이 과제를 수주하려 정부부처와 산업체를 찾아다니며 제안서를 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바람에 연구는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PBS제도 완전 철폐가 차기 정부에서는 이뤄져야 하며 출연연은 인건비 확보를 주력할 것이 아니라 맡은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지 고민하고 주력하는 연구기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밖에 2017년 주력으로 두고 있는 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의 사업과 계획에 대해서는 ‘출연연의 지위’를 바꾸는 것을 꼽았다. 현행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출연연이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것을 바꿔 연구 자율성 확보를 꾀할 복안이다.

양 회장은 “기타공공기관은 강원랜드 같은 수익을 추구하는 정부기관이며, 출연연이 이런 기관들과 같은 잣대로 운영될 경우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는 연구기관이 되기 어렵다”며 “국회에서 발의 중인 관련 법안 개정안이 2017년에는 심의를 통해 통과된다면 총연합회는 연구원들이 자율성을 되찾는 구체적인 방법을 검토하고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내년도 과학계의 모습에 대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희망했다. 양수석 회장은 “지금은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혼란스럽지만 과학계는 그리고 출연연은 전환기의 공백을 딛고 다시 일어설 것으로 확신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회복이며 국민과 정부, 정부와 기관, 기관과 연구원, 연구원과 국민 사이에 신뢰를 바탕으로 기다려준다면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 탄생하고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훈 기자 jjh119@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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