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원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
[반려동물 이야기]

예전에 미국의 대학 동물병원에 비지팅(visiting) 수의사로 가서 그 곳의 시스템과 진료가 이뤄지는 현장에서 함께 하면서 깜짝 놀랐던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동물병원, 즉 2차 동물병원이나 대학동물병원 같은 대형 동물병원에는 자신의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슬픔' 상담사가 존재하거나 이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 주고, 가끔은 이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슬픔을 털어놓고 이겨낼 수 있도록 북돋아 주는 모임까지도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일부 동물병원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지만, 일부 수의 선진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전문인력이나 프로그램, 보호자들의 인식 등에서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반려동물을 잃어버린 보호자들은 주변의 차가운 한마디 한마디에 더욱 슬픔이 배가가 되는 경우가 있다. 고작 '개' 혹은 '고양이' 죽었다고 그러느냐… 등의 시선이나 말투들에 더욱 상심하고 힘들어 지게 된다. 나 또한 수의대 학부 재학시절 나의 첫 반려견을 잃어버린 후 애도하겠다는 심정으로 한 달 정도 무채색 옷을 입고 다니자 뭘 그리 요란을 떠느냐고 타박하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또 어떤 이들은 그저 '시간이 약이다' 라며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을 거라 이야기 하지만 사랑의 종류 중에서도 아가페적인 사랑과 가까운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은 그 '시간'이라는 것이 그리 짧지 않은 경우가 많다.

슬픔의 적응 단계는 보통 4~5단계로 설명하는데 이는 정신과 의사였던 Elisabeth K. 가 그의 저서인 'On Death and Dying'(죽음, 그리고 죽어가는 것에 관하여)에서 처음으로 정립했다고 하며, 수의학에서도 반려동물과 작별을 고해야 할 때에도 이러한 단계를 순차적, 혹은 복합적으로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잠시 이에 대해 소개 하자면 이 중 1단계는 부정단계로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단계로 갑작스러운 쇼크로 다가온다. 2단계는 분노 단계로, 대체적으로는 치료를 하지 못한 수의사나 고통을 만들어 낸 주체에 대한 분노의 단계이다. 3단계는 거래 단계로, 더 빨리 치료를 했더라면, 이랬다면, 저랬다면 등의 자신의 행위에 대한 후회를 하는 단계이다. 4단계는 우울단계로, 두 가지 종류의 우울감이 있는데, 그 첫 번째는 현실적인 우울감으로 비용이나 수습해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우울감, 그리고 두 번째는 내면적인 우울감으로, 이 단계에서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이 큰 힘이 되어 현실을 받아들이는 준비 단계로 볼 수 있다. 5단계는 수용의 단계로 반려동물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 들여 현실에 적응하고자 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사실 사랑했던 반려동물과 '안녕'을 하는 것은 내가 겪어 본 경험에 의하면 절대 연습이 되거나 준비를 했다고 해서 그 슬픔이 엷어지지는 않는다. 13살에 노령성 심장질환이 있었고, 일생에 걸쳐 7번의 수술을 감행해야 했던 나의 반려견 '얄리'는 3년 넘게 심장약을 먹여야 했고, 기침을 할 때마다 녀석과의 안녕을 그려보곤 했지만, 결국 녀석이 교통사고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수없이 그려본 녀석과의 '안녕'은 그저 순간의 슬픈 순간에 대한 상상이었을 뿐, 슬픔의 깊이가 엷어지지도, 슬픔의 기간이 짧아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떠나 보내면서 슬픔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정상적이며, 간혹 감당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힘들지만 이겨내야 한다는 점과 분명 녀석들은 나보다 오래 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사실 얄리가 만약 나보다 더 오래 산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죽은 후 얄리는 어떻게 살아가지? 라는 생각에 눈도 편히 못 감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슬픔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긴 했다). 그리고 녀석을 가슴에 묻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을 얄리도 바라지 않았을까?

떠나 보낸 이들은 이를 이겨내기 위한 의지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이처럼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이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가 우리의 '안녕'을 조금은 덜 아프게 해 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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