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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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폭풍우를 만든다. 한낱 퍼덕임이 아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가 날개를 퍼덕이면 대기에 영향을 주고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어 미국 뉴욕을 강타하는 허리케인과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다.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아주 소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프랑스 대학생 8명이 미국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건물 유리창을 박살낸 것이다. 일종의 반전(反戰) 외침이었는데, 졸지에 남녀평등, 히피운동, 여성해방운동, 반정부시위로 커졌다. 이것이 '보수체제'를 거부한 프랑스 '68혁명'의 원형질이다.

▶당황한 드골 대통령은 국무총리인 조르주 퐁피두에게 수습을 떠맡기고 군사기지로 피신했다. 의회도 해산시켰다. 그런데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이듬해 열린 선거에서 우파가 승리한 것이다. 대선에서는 드골의 ‘꼬붕’이었던 퐁피두가 당선됐다. 한마디로 ‘68혁명’은 좌파의 승리였지만 ‘선거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68혁명'을 공유한 독일에서도 우파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졌지만 총선에서 좌파가 패했다. 68년 '뜨거운 가을(autunno caldo)'로 불린 노동운동이 전국을 강타한 이탈리아에서도 우파가 재집권에 성공했다.

▶한국 정치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87년 6·10민주항쟁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지만, 6개월 뒤 열린 대선에서 좌파가 무릎을 꿇었다. 야권은 전두환 후계자인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지켜봐야 했다. 야권 양대 산맥인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분열 때문이었다. 당시 노 당선자의 지지율은 36.6%로, 김영삼 후보(28%)와 김대중 후보(27%)의 합인 55%보다 18.4%포인트 적었다. 정치는 생물(生物)이다. 95년 민자당 김종필(JP) 당시 대표최고위원은 함께 탈당한 의원 5명과 충청권 기반으로 한 자민련을 창당했다. 자민련은 15대 총선에서 50석을 차지했다. 이회창은 9년8개월을 1등 하다가 마지막 한 달을 잘못해 김대중·노무현에게 패배했다. 김대중은 이인제가 492만표를 얻어주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미국에서도 9%의 트럼프가 91%의 힐러리를 뒤집었다.

▶시위가 길어지면 피로도가 높아진다. 시위에 동조했던 시민들도 점점 염증을 느낀다. '퐁피두 현상'이다. 대통령을 탄핵하면 야권이 승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상상일 뿐이다. 촛불에 편승해 벌써 대통령이 된 듯 까불면 역풍이 불 수도 있다. 혼란 뒤 안정에 대한 희구 때문이다. 숫자만 보면 권력 풍향계가 야권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보수는 권력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정말 귀신같이 자기 복원력을 갖는다. 야당은 촛불과 퐁피두의 메시지를 정확히 읽어라.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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