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본사 편집국장
[나인문의 窓]

지난 9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우리 사회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김영란법의 영향력과 파급력이 예상보다 훨씬 큰 맹위를 떨쳤기 때문이다.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을 넘어서면 처벌을 받는 탓에 이 법은 공직사회를 넘어 모든 사람의 일상까지 바꾸는 듯 했다. 식당에서는 2만 9000원짜리 김영란 메뉴를 내놓는가 하면, 4만 9000원짜리 조화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부정청탁을 없애고, 금품과 향응을 수수하는 것을 없애자는 이 법이 자리도 잡기 전에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등에 없고 호가호위하며 기업을 겁박해 수백억 원의 '삥'을 뜯는 마당에 3만, 5만, 10만 원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김영란법은 이미 법 제정 취지를 상실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낡은 접대 문화를 몰아내고 투명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김영란법을 볼품없는 일개 미천하면서도 교활한 여인네(최순실)가 집어삼킨 셈이다. 식당에서 응당한 밥값을 내면서도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공직자들은 국정을 농단하며 수백억 원을 등친 최순실 일가를 보며 이 법의 존재가치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몇 만 원짜리 식사를 하느냐에 따라 법의 담장을 넘나들어야 했던 민초들은 최순실 일가가 등치고 간 내먹은 돈의 액수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촛불 민심을 거스른 채 탄핵은 잘못된 것이라는 궤변에 몰입해 있다. “방(청와대)을 빼라”는 국민들의 외침은 안중에도 없다. “이게 나라냐?”는 탄식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두어라 못된 버릇을 초장에 고치지 못한 국민들의 억장만 무너져 내릴 뿐이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를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여긴 오만이 부른 자업자득인데도 말이다. 알 위에 알을 쌓아놓은 것처럼 위험한 ‘누란지위(累卵之危)’의 국가위기를 왜 대통령만 모른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 헌법 제1조를 귓등으로 들은 탓이다. 권력이 있으면 죄도 덮을 수 있을 것이라는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거만함에 기가 찰뿐이다.

자고로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라고 했다. 하늘의 그물은 눈이 굉장히 넓어서 성근 것 같지만 죄인을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늘의 성긴 그물에 갇힌 최순실·안종범·정호성·장시호·김종·송성각 등 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된 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수의를 입고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또 그 그물에 갇힐까 전전긍긍하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비롯해 이미 구속된 정호성과 남아있는 이재만·안봉근 등 문고리 3인방 역시, 천망불루를 비켜가려고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모습이 한심할 뿐이다. 제 아무리 ‘법 미꾸라지’라는 별칭이 붙었지만, 국민들은 콩과 보리도 분간 못 하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의 위선이 진실을 가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대곡(大哭)한다. 민주주의의 위기이고, 대한민국의 위기이다.

작금의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해법은 탈각(脫却)과 자구의 몸부림뿐이다. 허위에서 벗어나 실다움의 자기자리로 갈 것을 경책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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