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입석으로 표를 사서 빈자리에 앉아있으면 도무지 불안하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자리임자 존재 때문이기도 하고 남의 좌석에 앉아있다는 불편함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그냥 앉아 있다가 좌석 주인이 등장하면 비켜주는 것이 관례인데 이 승객은 특이했다. 혹시 강박증이나 결벽증, 정서불안 같은 심리상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한 시간 반가량 동석하면서 그런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내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할 때 보니 눈빛이 무척 맑았다.
이즈음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인사들이 한결 같이 모른다, 아니다, 기억에 없다 또는 뻔한 사실을 거짓으로 증언하는 모양새를 보니 이런 양심적인 사람들의 태도가 소중해보였다. 높은 자리에 앉아있던 인물들이 그때만 모면하고 보자는 도덕불감증이 만연한 이즈음 결국 세상을 지켜가고 혼탁한 사회를 유지하고 정화시키는 힘은 이런 원칙주의자 어찌 보면 시치미를 못 떼는 융통성 없는 사람들의 정직함에서 솟아나오는 듯하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