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촛불이 탄다. 촛불이 타는 건 제 몸을 태워 세상을 구해보겠다는 아주 거룩한 희생이 아니다. 제 몸을 바쳐 조금이라도 세상의 불구(不具)를 고쳐보겠다는 온전한 헌신이다. 그 촛불은 때론 횃불이 되어 세상의 등불이 되기도 한다. 몸을 태우고 또 태우면서 바닥을 드러내면 불꽃은 불(火)이 아니라 꽃(花)이 된다.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소실점이 아니라 발화점이다. 촛불을 들었다는 건 국가가 국민을 버렸다는 역설적인 증거다.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하고, 국민이 국가를 지켜야하는 한심한 상황을 빛(光)으로써 경고하는 것이다. 왜 유모차를 끌고, 지팡이를 짚고 차가운 광장으로 나가야했는지가 촛불의 팩트다.

▶모두가 우울증에 걸렸다. '나쁜 대통령' 한사람 때문에 모두가 트라우마(trauma)에 시달리고 있다. 트라우마는 외상(外傷)이다. 문제는 겉으로 드러난 상처가 아니라 정신적 상처라는 점이다. 외상은 연고를 바르면 낫는다. 시간이 흐르면 낫는다. 그런데 정신적 외상은 치유되지 않는다. 무덤에 묻힐 때까지 곪고 닳고 썩어가면서 괴롭힌다. 육신이 아니라 정신을 쥐고 흔드니 그 참담한 현신(現身)은 피가 터지며 멍든다. 최순실과 박근혜 게이트…. 자괴감이 든다. 믿었던, 아니 믿고 싶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기에 내상(內傷)이다. 사기(詐欺)는 자국을 남긴다. 돈을 뺏긴 것은 참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잊을 수 있고, 가해자와 절멸하면 끝이다. 그런데 정신적 충격은 잊히질 않는다. 5000만이 몇 사람의 공모(共謀)에 능멸 당했다는 사실이 우릴 두 번 죽이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죽어갈 때 혼자 살아남는 건, 죽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다. 죽음을 곁에서 직접 목도했다면 상황은 더더욱 참담해진다. 그 찰나의 장면은 오랜 세월 이명처럼 온몸을 헤집으며 철저하게 기록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 눈앞에서 죽어간 친구들을 본 아이들이 온전할 수 있을까.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지만, 자신은 살고 친구는 죽어간 현장의 기억을 잊기 힘들다. 5·18광주민중항쟁 때 4312명이 희생됐다. 3193명은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남았다. 이중 42명이 자살했다.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미국인은 5만4000명이었다. 그런데 참전용사 10만2000명이 자살했다. 트라우마는 이런 것이다.

▶사상 최악의 게이트는 신라 진성여왕이 연인이자 삼촌이었던 각간 위홍에게 왕위를 이양했던 것이나, 고려 천추태후가 연인 김치양과 합작해 목종을 꼭두각시로 만들었던 스캔들을 연상시킨다. 우리내 정치 원형질은 무엇인가. 속고 또 속고 그러면서 또 후회하는 저열함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이 겪는 행불행의 90%는 마음에서 온다. 트라우마는 집단 최면이다. 환멸과 반목, 분노와 허탈은 전염된다. 국가의 병이 고황에 드는데도 여전히 정권창출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판을 보고 있자니 ‘촛불’이 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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