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억 신부(청주성모병원 행정부원장)
[아침마당]

한 해의 끝자락에 정리할 것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평화를 기원하고 싶다. 촛불민심이 혼란에 빠진 이 나라를 안정시키는 선한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성경에 보면,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코헬3, 1-9)라고 적혀있다. 때와 시기를 맞출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절실하다.

대통령이 피부미용을 하고 머리손질을 하는 것을 누가 탓하겠는가.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하는 당일 그 시간이라면 문제이다. 공직자들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따라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공익이 아니라 사익추구라면, 잘못된 요구라면 그것에 대해 침묵할 때가 아니라 말할 때이다. 시기와 때를 놓친 결과는 너무도 많은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기 때문이다. 아니,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먼저 자신을 죽일 때이고 마음 안에 있는 그릇된 틀을 부술 때라고 인식한다면 지금은 특검을 해야 할 시기이고, 탄핵을 해야 할 때라고, 사임을 해야 한다고 소리치지 않고 껴안을 때이고, 사랑할 때라고 외칠 수 있으련만 그 기회를 놓치고 있어 안타깝다.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세 가지 덕목으로 첫째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것', 둘째는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 셋째는 '소신이 없는 것'으로 말하는 이도 있다. 현실을 빗댄 우스갯소리이다. 그러나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임기응변에 뛰어나다 해도 하늘의 그물은 빠져 나갈 수 없고 참을 이길 수 없다. 진리 안에 자유로운 지도자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운 마음이 전혀 없는 뻔뻔함이 더해가는 현실에 촛불은 더욱 더 타오를 수밖에 없다. 소신 있고 주관이 뚜렷한 지도자를 원하지만 똥고집만 피우거나 줏대 없이 흔들리는 이들은 그 명이 다한 때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채근담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들은 이야기라고 다할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본 일이라고 해서 본 것을 다 말할 것도 아니다. 사람은 그 자신의 귀와 눈과 입으로 해서 자기 자신을 거칠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궁지에 빠지고 만다. 현명한 사람은 남의 욕설이나 비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또 남의 단점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에 대해 말이 많다. 실망을 넘어 절망스럽고 '이게 나라냐'라는 말도 나온다. 국정조사 청문회를 보면서 명쾌한 진상 규명에 기뻐하기 보다는 기득권의 속을 보며 상처만 키워간다. 그러나 말이 많은 만큼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할 때이다. 지금은 사랑할 때이고 평화를 위해서 기도할 때임이 분명하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 아니라 변화시켜야 할 주체는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때, 기뻐 뛸 때가 속히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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