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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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이상한 所聞(39)

박씨는 안사랑 방문 앞에 이르러 왕이 내시 김자원에게 몸을 맡긴 채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물러나 문밖에 멈춰 섰다.

"전하, 졸지에 침방을 꾸며서 모시게 되오니 소루한 점이 많아서 황공하옵니다."

"원, 별 말씀을…. 큰어머님께서는 잠시 안으로 드시오."

"예, 동궁 저하가 편안히 잠들었는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동궁이 숙소로 돌아간 지 오래된 것 같은데 무얼 또 살피고 말고 합니까?"

"하오나 여러 해 동안 밤중에 동궁 저하의 숙소를 살피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서 한번만 걸러도 마음이 불안하옵니다."

"큰어머님의 정성이 그러하시기에 동궁을 여러 해 동안 맡겨 놓고 안심할 수가 있었던 것이오. 그러시면 잠시 다녀 오십시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여름철 장맛비처럼 궂은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고 있었다.

박씨는 우장(雨裝)을 갖추고 몸종의 부축을 받으며 시녀들을 앞세워 세자의 숙소를 둘러보고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숙위(宿衛)하는 동궁의 관리와 내시들을 격려하고 위로한 후 안채로 돌아왔다.

젖은 옷을 새옷으로 갈아입고, 왕이 기다리고 있는 안사랑으로 갔다.

방문 앞 마루 바닥에 부복해 있던 내시 김자원이 고개를 들고 아뢰었다.

"전하, 승평부부인이옵니다."
"어서 뫼시어라."

박씨는 그때까지 옆에서 부축해 주던 몸종을 떼어놓고 치맛자락을 여며 잡고 방안으로 한발 들여놓는 순가 눈앞이 빙그르르 도는 현기증으로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얼른 문설주를 붙잡았다.

왕은 익선관과 용포를 벗고 등옷바람으로 요 위에 앉아 있었는데 언제 들어왔는지 주효가 얹힌 작은 팔모반이 앞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맞은 편 쪽에는 방석이 하나 놓여 있었다.

"큰어머님, 이리 좌정하시오. 연석에서 헌수(獻壽)를 하였지만 마음에 미진한 감이 있어 잔을 더 올리려 하오."

왕은 붉고 몽롱한 취안(醉眼)에 앉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좌우로 흔들흔들하며 박씨에게 혀굳은 소리로 방석에 앉기를 권하였다.

"전하, 이미 내려주신 잔만으로도 은혜가 넘치옵니다. 밤이 깊었사오니 그만 침수 드시오소서."

박씨는 사양하면서 왕이 가리키는 방석 위에 자기도 모르게 흐트러진 용의(容儀)로 주저앉았다. 마음은 왕에게서 멀리 몸을 피하고 싶은데 일배일배 부일배로 받아 마신 술이 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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