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시론]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 어제 끝났다. 숨가쁘게 달려온 레이스를 마무리하며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잠깐 심호흡을 들이킬 때이다. 대견한 학생들, 애쓴 학부모, 땀방울 쏟은 교사 모두에게 존경과 격려의 큰 박수를 보낸다.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건 알아요.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많은 것들이 시험으로 결정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초등학생들한테서도 듣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12년간의 배움을 평가하고 미래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시험을 치렀으니, 수험생들이 겪었을 초조와 긴장, 분발과 고통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곧 수능 점수가 나올 것이다. 기대이상의 점수가 나왔을 때는 환호작약할 것이고, 낮은 점수가 나왔을 때는 좌절낙담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의 시험이 학생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최종 평가일 수는 없다. 그러니 아무쪼록 수능결과로 기뻐할 일은 기뻐하더라도 지나친 절망은 경계했으면 좋겠다. 측정 도구로써 시험의 한계를 생각할 때 필자는 늘 소동파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젊은 시절 소동파는 자신의 실력과 학문에 대해 자만심이 넘쳤다. 다른 사람들은 안하무인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승호라는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이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하고 묻자, "저울입니다."라고 답했다. 다른 사람의 무게를 평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승호스님은 갑자기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 "악!" 소동파가 순간적으로 놀라서 움찔하자, "이 소리는 몇 근이나 나가는가?"하고 물었다. 소동파는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소리를 저울질할 수 없는 것처럼 시험도 사람의 능력 전반을 평가할 수 없다. 현재 이뤄지는 시험은 사실 언어능력평가에 가깝다. 언어능력이 뛰어난 수험자가 점수를 잘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시험이라는 틀은 얼기설기한 체와 같다. 인간의 많은 능력과 자질이 체의 눈으로 빠져나가버린다. 불완전한 도구라는 뜻이다. 그나마 암기력 위주의 지식평가에 가까웠던 학력고사를 개선해 분석, 비판, 종합 등 사고력을 측정하는 수능시험으로 바뀐 것에 만족해야 할까. 수능을 대체하는 큰 흐름이 있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수시전형으로 뽑는 비율이 70%에 이르고 있다. 수시전형의 대다수는 학교생활과 내신 성적, 자기소개서 등으로 뽑는 학생부 종합전형이다.

여하튼 수능 시험은 끝났다. 수능 성적 중심으로 대학을 가야 하는 학생들은 정시원서를 쓰고 입학 전형을 대비해야 한다. 이미 수시전형을 통해 합격 통지를 받은 학생들은 차분히 대학생활을 준비할 시기이다.

바라건대 수험생들은 자신이 치른 시험을 넘어 현실의 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사람은 모름지기 현실의 복잡다기한 문제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능력과 자질을 평가받는 법이다.

현실은 정답이 있는 문제로 구성돼 있지 않다. 설사 정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답인지 아닌지 다른 사람들이 확증해주지 않는다. 김병우 충북도교육감이 '정답의 노예가 되지 말고 해답의 주인이 되라'고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이가 낸 문제의 답, 정해진 답을 찾는 데 급급하지 말고 다양한 해답의 세계로 나아가길 바란다. 해답을 찾는 속에서 스스로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길 바란다. 새로운 삶과 지혜의 문은 이러한 질문 속에서 열린다. 시험을 넘어 현실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도전하며 성취하는 것, 그것이 인생을 사는 수험생의 자세일 것이다. 더 넓은 학교, 더 큰 배움의 길 위에 선 모든 수험생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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