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 수필가

친구와 함께 중무장하고 나섰다. 친구는 이번 참에 가시박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그나마 성한 밭마저 먹히고 만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둔치로 따라가 보니 독 오른 가시박이 온통 뒤덮고 있었다. 친구는 하천 둔치에 고구마·콩·파·배추·무·고추를 심고 직접 재배해 먹었다. 언제부턴가 박 비슷한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예사로 여기고 덤불만 걷어냈는데, 금세 새순이 돋더니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냇가에 사는 들풀이고 버드나무고 먹어치우고 있다는 것이다. 알아보니 그것이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온 생태교란식물 가시박이라는 것을 알았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더니 땅 주인을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밉광스러운 가시박.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허리를 구부렸다. 옆에 사는 식물 따윈 이미 안중에도 없다. 가시박은 손바닥만 한 잎사귀를 쭉 펴고는 걸신들린 듯 뻗어나갔다. 순진함을 가장한 작고 앙증맞은 꽃 사이로 오종종하게 달린 흰 털투성이 열매는 꼭 살모사 대가리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우리나라도 지금 가시박 덤불에 갇힌 꼴이 아닌가. 최고 권력자와 그의 집권세력의 행태가 꼭 생태를 교란하는 가시박을 닮았다.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를 경청해야 하고, 소통해야 하고, 배려하고, 국민의 눈물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는 귀를 막고, 눈을 가렸으며, 소통을 끊어버렸다. 잘못을 간할 만한 강직한 사람은 모두 쳐내고 아첨꾼을 곁에 뒀다. 최 씨와 문고리 3인방은 범죄의 하수인이 돼 사익을 위해 국기 문란행위를 자행한 것은 물론, 헌법파괴와 국민과 국가의 격을 추락시켰다.

우리는 지금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 100만 명 촛불집회의 의미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뿐 아니라 정치체제까지 바뀌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이며, 내일의 세상을 도모하는 외침이었다.

오직 자신만 살아남으려는 가시박을 낫으로 자르고 뿌리를 뽑으려는데 땅 깊숙이 뻗어 나간 탐욕의 뿌리는 쉽게 뽑히지 않았다. 만약 오뉴월쯤 어린 순을 미리 뽑아버렸다면 가시박이 독식하며 우리 식물을 고사시키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 40여 년간 끌어온 최씨 일가와 대통령의 국정 농단의 뿌리를 캐내야 한다.

친구는 가시박을 뽑은 자리에 코스모스와 백일홍을 심겠다고 했다. 덕분에 몹쓸 외래종 식물에 시달리던 땅이 아름다운 꽃 세상으로 변해 원래 주인들을 불러 모으겠다.

아름답게 물들었던 나뭇잎이 미련 없이 떨어지고 있다. 나무가 빈 가지로 남는 것은 내일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이번 사태의 주인공들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용서를 빌고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내려놓아야 한다. 아름다운 미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제왕적인 권력을 승자 독식하는 가시박 같은 헌법도 바뀌어야만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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