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억 신부(청주성모병원 행정부원장)
[아침마당]

아무래도 가을의 절정은 단풍이다. 형형색색 자태를 뽐내며 감탄을 자아낸다. 잠시 눈을 돌려 마음의 여유를 갖기만 한다면 채비를 차리고 멀리 떠나지 않아도 자연의 섭리 앞에 가슴 벅찬 기쁨을 간직할 수 있다. 그런데 단풍은 가을이 되면 나무 잎의 생육활동이 떨어져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는 능력이 둔화되고 때문에 엽록소가 왕성하게 생성되지 않아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잎 속의 엽록소가 햇빛에 노출돼 파괴되고 대신 엽록소에 가려져 있던 다른 다양한 색소들이 드러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며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즐긴다. 그러나 이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 안에는 내려놓음의 원리가 있다.

단풍은 왜 아름다울까.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내려놓음으로써 다음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다 내려놓고 벌거벗는 나무들이지만 그 안에 절제된 새 생명력이 저장되고 있기에 아름답다. 내려놓는 만큼 미래가 약속되고 있기 때문에 기쁨이 충만하다.

나무의 생명력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물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던 영양분인 그 수분을 이제 가을이 되면 나무는 긴긴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로 자신의 몸에 있는 수분을 서서히 그리고 알맞게 꼭 필요한 만큼 남기고 빼 버리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수분으로 인해 얼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자연의 순리가 단풍이라면 우리 마음에도 그 원리가 살아있기를 소망해 본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라고 하셨다. 섬기는 사람이 되고, 종이 된다는 것은 바로 자기를 내려놓는다는 것이고 몸값을 치른다는 것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는 것이다. 모두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윗사람이 될 자격이 있다.

요즘 현실은 윗사람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윗사람 노릇을 하려고 해서 탈이다. 너도나도 가르치는 선생이 되려하니 문제가 많다. 남을 가르치기에 앞서 자신에게 충고해야 하거늘 매사에 남 탓만 하고 자기 잇속을 채우려 엉터리 없이 잘못 가르치니 화를 자초한다. '그칠 줄을 알면 부끄러움이 없고 분수에 맞으면 세상이 여유롭다' 했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이 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본이다. 먼저 자신의 깊이가 어떤지 알아보고 모든 일을 감당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서 여유로움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많은 이들은 대통령이 '2선으로 후퇴하라'고 한다. '내려놓으라'고 한다. 국무총리로 지명을 받은 사람이 "저를 끌어 내리는 방법은 여야가 합의 하거나 대통령이 지명철회 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상황을 "녹아 없어지는 얼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스로 내려놓으면 빼앗긴다는 마음은 없을 것을. 국가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이들부터 자연의 순리에 순응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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