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몸 실으면 난 자유인"

심장이 터질듯한 격렬함이 온 몸을 휘감는 순간.

'샤먼'(shaman)의 심장들은 100m를 14초에 막 완주했을 때 느끼는 숨막힘과 극도의 갈증을 훌쩍 넘어 온 몸을 가능한 모든 각도로 빠르게 가누어야 하는 파워 재즈의 강한 비트 속으로 또다시 미끄러져 쿵쾅거린다.

밤 11시 대전시 동구 용전동 뉴스 나이트 클럽.

3인조 라이브 여성 DJ팀 '샤먼'의 등장으로 700평 남짓한 뉴스 나이트 클럽 전체가 온통 난리다.

무대명 그대로 스테이지에 오른 유익태(가명·여·24), 유익키(가명·여·21), 하얀(가명·여·23)씨는 깊은 밤 신들린 무당이 돼 눈을 뗄 수 없는 화끈한 몽환적 몸놀림으로 관객들의 저 밑바닥 스트레스까지 몽땅 끄집어 낸다.

절정으로 치닫는 이 몽환의 테크닉은 그러나 아주 초라한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시작됐다. 1994년 겨울, 클럽 이름과는 정반대로 1주일에 한 테이블 차면 다행인 이태원의 '붐'(Boom)이라는 허름한 클럽 앞에 한 소녀가 서 있다.

"너 몇 살인데 여기서 어슬렁거리니."

까치라는 명찰을 큼지막하게 가슴팍에 붙인 웨이터가 어린 익태씨의 출입을 막는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여기서 일하게 해 주세요. 전 가수가 되고 싶어요."

똘망똘망한 눈으로 대답하는 15살짜리 소녀를 까치 아저씨는 그냥 웃어 넘겼지만 그 소녀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찾아와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이었다.

마침 익태씨는 이른 나이에 DJ 보조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지루했던 일상에서 벗어난 순간인 동시에 하루 10시간이 넘는 고된 연습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넌 뭔데 하루도 안 빼고 연습만 하면서 DJ 오빠들에게 잘 보일려고 날뛰는 거야."

4년후 같이 DJ 일을 배우던 7명의 견습생 언니들이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익태를 주먹으로 매질 하기도 했지만 4년 후 그들 모두 빡빡한 견습생활을 극복한하지 못해 DJ 길을 포기할 때 익태씨는 DJ 보조에서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하우스'로 승격됐다.

랩을 라이브로 구사하면서 익태씨는 솔로 DJ로 입문했고 명동과 강남, 인천 등 40여곳의 나이트 클럽을 오가며 기량을 쌓았다.

많게는 5개월, 적게는 1~2개월씩 기라성 같은 DJ들 밑에서 생활한 지 5년.

서커스에서 핀봉을 이용해 묘기를 부리듯 손가락 박자를 가지고 턴 테이블을 누비는 저글링, 브리트니 스피어스에서 소찬휘 곡까지 빠르기에 김이 새지 않도록 수십 곡을 자연스레 잇는 믹싱, 턴 테이블의 LP를 위 아래, 좌우로 움직이는 스크래칭과 샘플링 기술 모두 이제 그녀의 일부다.

밤무대를 있는 그대로의 독립된 문화공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만년 마이너(minor)들의 무대로 보거나 심지어 퇴폐적 공연이 은근히 기대되는 장소로 여기는 비뚤어진 시선들과 그녀는 싸우며 실력으로 승부하는 DJ가 되고 싶었다.

실력보다는 속옷을 벗어 젖히며 노출로 승부하는 일명 '빤스 DJ'들에게 실력만이 통한다는 원칙을 몸으로 보여주며 끊임없이 설득해 나가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하루 세번씩 무대에 오르는 생활이 1주일, 한 달, 1년간 이어졌지만 쉬는 날은 한달에 2~3일 뿐.

무엇이 그녀를 이처럼 맹렬 DJ로 이끄는 것일까.

자신에게 엄격한 익태씨는 조금만 연습을 게을리하면 금새 후배들에게 뒤쳐지는 이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새벽 5시 클럽일을 끝내고 간단한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낮 12시까지 맹연습을 한다.

덕분에 왠만한 대기업 부장 못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이 바닥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데 성공했고 홀로 부천에 계신 할머니 용돈도 넉넉히 드릴 수 있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

주체할 수 없는 끼와 음악이 붉은 피가 돼 몸에 흡수돼 심장을 거쳐 율동과 함께 다시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질 때 느끼는 피할 수 없는 마력이 마르지 않는 그녀의 샘물이다.

그러나 외로웠다.

부모님과 일찍 헤어진 후 할머니와 단둘이 경기도 부천에서 살아온 어린 시절도 그랬고 이제 전국을 누비는 라이브 DJ로 잘 나가고 있지만 솔로로 활동하다 보니 그녀는 항상 외로웠다.

그래서 만난 트리플 멤버가 유키와 하얀이다.

1m70㎝를 훌쩍 넘는 쭉 빠진 몸매에 세 명의 유혹적인 허리 선이 현란한 조명아래 하나로 엮어져 요동칠라 치면 남자 관객뿐 아니라 숱한 여성 손님들도 탄식을 금치 못한 채 팬이 돼 버린다.

다듬어지지 않은 옥석처럼 아직 음악에 자신을 싣는 데는 미숙한 유키와 하얀이지만 익태씨는 그녀들의 잠재된 꿈과 끼를 이끌어 주는데 여념이 없다.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며 익태씨는 그녀들과 '샤먼'을 결성, 제2의 라이브 DJ 인생을 시작했다.

17분23초 동안의 격렬하고 절도 있는 라이브의 결정체를 선보이는 새로운 작업을 하면서도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언제나 부천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가 자리잡고 있다.

익태씨는 최근 할머니에게 새 아파트를 사드렸다. 언제나 금방 쓰러질 듯 좁고 오래된 아파트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가 안쓰러웠지만 이젠 마음이 편하다.

"앞으로 10년은 라이브 DJ를 할거예요. 보통 DJ 생명을 5년으로 보지만 맹연습으로 연마한 실력만 확실하다면 10년은 거뜬하다고 봐요. 그리고 10년 후에는 멋진 목욕탕을 운영하고 싶어요."

할머니와 자주 찾았던 대중 목욕탕. 목욕탕은 오락실 다음으로 어린 시절 그녀를 편안하게 해 주었던 그녀만의 공간이었고 언제나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세상은 참 살만한 곳이에요. 물론 내 선택과는 무관했던 어린 시절의 환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도 있지만 DJ 일을 하면서부터는 세상이 달라졌어요. 내가 노력하고 싸운 만큼 대접받고 누릴 수 있으니까요. 피곤함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어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의 피곤함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한 후 온 몸을 녹여주는 반가운 피곤함요. 지금처럼 그 기분좋은 피곤함을 언제나 친구로 삼으며 라이브를 계속할 거예요."

화려한 조명과 터질듯한 강렬한 음악. 마음껏 끼를 발산하는 젊은이들. 야할수록, 격렬할수록 그 격정이 그대로 존중되는 자유공간 나이트 클럽. 익태씨와 그 멤버들은 오늘도 무당이 돼 무대 한편에서 신들린 젊음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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