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카자흐스탄에 사는 우리 동포 즉 고려인은 대략 10만 여명. 전체 인구의 0.6%에 지나지 않지만 정착배경과 역사, 강인한 적응력 그리고 문화의 원류에 대한 애정과 집착 같은 면에서는 700만에 이른다는 해외동포 그룹 중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극동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은 낯선 지역, 척박한 땅으로 내몰렸다. 황무지를 개간하고 낯선 곳에서의 적응과 동화에는 숱한 시련과 희생이 뒤따랐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궁핍한 상황에서도 동포들이 극장을 설립하여 신명과 한을 풀어내는 공연예술에 관심을 기울인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강제이주 이전인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문을 연 조선극장이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와 고려극장<사진>으로 바뀐 후 80년, 고국을 떠난 설움과 향수를 달래주던 이 무대는 해외 한인사회 최장수극장의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순회공연단인 아리랑가무단과 더불어 이 지역 한민족 공연문화와 전통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해오면서 고려인 사회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제 고려인 3세, 4세가 주역이 되면서 콘텐츠도 바뀌고 있다. 순수 우리말 공연 비중이 줄어들고 프로그램 역시 전통적 내용에서 여러 퓨전요소가 도입되면서 80년 고려극장 역사는 일대 전환기를 맞은 셈이다. 국내 공연단체, 기관과 교류를 증진하면서 수준향상과 현대화를 가속화하고 배우, 기자재 등에서도 합리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카자흐국립대 한국학과장 이병조 교수의 견해는 타당해 보인다.

그럴듯한 명분과 포장아래 실속 없이 남용되는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이런 해외동포문화 지원에 집중 투입이 필요하다. 점차 우리 원형에서 멀어지면서 해당국가의 문화색채 유입이 가속화되는 이즈음 해외 우리 전통문화 활동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힘을 실어 주기위한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은 미룰 일이 아니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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