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본사 편집국장
[나인문의 窓]

"가을 구름 떠가고 /고요한 이 산은 /바람에 지는 낙엽 /땅에 가득 붉어라 /시냇가에 말 세우고 /갈 길 물으니 /모르겠네 이 몸 있는 곳 /그림 속은 아닌지."

가을 산의 선경을 묘사한 삼봉(三峰) 정도전의 시 한수를 읊다보면 시중유화(詩中有畵)는 바로 이런 것이구나 깨닫게 된다.

조선 중기 여러 요직을 거쳤던 박수량(朴守良)은 중종 8년 진사에 합격한 이후 충청도도사·경기도관찰사 등 39년 간 고관대작을 지냈지만,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청렴결백해 맹사성·황희·이황 등과 함께 청백리로 뽑혔다. 죽어서도 장례비용이 없어 관을 들 사람조차 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가슴을 저미게 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보름이 흘렀다. 이 법의 영향력과 파급력은 예상보다 훨씬 큰 맹위를 떨치고 있다. 공직사회를 넘어 모든 사람의 일상까지 바꾸고 있다.

문제는 입법 취지대로 부정청탁이 확연히 줄어드는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감은 높지만, 부작용도 크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은 그동안 뿌리치기 어려웠던 청탁을 거절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근 식당은 문을 닫거나 종업원을 내보내야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2만 9900원짜리 김영란 메뉴를 내놓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눈 가리고 아옹이다. 반주로 소주 한 병만 곁들여도 제한액인 3만 원을 훌쩍 넘으니 하는 말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예나 지금이나 눈 먼 돈은 어차피 특정인에게 국한된 것이라는 일갈이다. 부정 청탁도, 검은 돈도 일반 서민들에게는 애초부터 딴 나라 얘기이고, 김영란법 이전에도 맘만 먹으면 형법으로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었다는 금언이다.

먹고 마시는 문제는 저렴한 음식점을 이용하거나 ‘각자내기(더치페이)’로 대부분 해결할 수 있지만, 쓴 소주한잔 기울이며 인생을 토해내던 우리네 정마저 메말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법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혼선도 문제다. 스승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도 선물하지 못한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카네이션 금지법'으로 희화화되기도 한다. 이미 상당수 화훼농은 화분을 갈아엎고, 꽃집은 임자 없어 시든 꽃을 내다버리고 있다. “법도 좋지만 이러다가는 다 굶어 죽을 판"이라는 아우성이다.

그러나 정작 주무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인력 부족으로 이런 혼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이 법이 정착되기 전까지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낡은 접대 문화를 몰아내고 투명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적어도 서민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소의 뿔을 바로잡는 양 설치다가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본은 결국 법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혹 아직도 '부정의 유혹'으로 마음이 기울거든, 조선조 청백리로 추앙받던 선초삼청의 한 명인 류관의 유훈을 기억할지어다.

'우리 집안에 길이 전할 것은 오직 청백이니,대대로 끝없이 이어지리라(吾家長物唯淸白 世世相傳無限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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