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철 충남도교육감
[아침마당]

사진작가의 꿈을 갖고 있던 시리아의 고등학생 칼리드 카티브는 '시민을 구하는 시민', '하얀 헬멧'이 됐다. 2년 전 피와 먼지로 범벅된 얼굴로 초점을 잃은 어린아이의 사진 '세계를 울린 울지 않는 소년'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이 청년 카티브다.

지난달엔 무너진 건물 속에서 12시간의 사투 끝에 갓난아기를 구조한 하얀 헬멧의 눈물이 유튜브에 오르기도 했다. 미디어를 통해 하얀 헬멧이 알려지면서 내전 현장을 누비며 인명 구조 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대안 노벨상을 수상했다.

대안 노벨상은 강대국의 영향력 아래 놓인 노벨상에서 탈피해 인류에 실질적으로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 주어진다.

터키의 한 연구자는 '시리아에 쏟아지는 폭격과 파괴는 하루에 진도 7.6 규모의 지진이 50번쯤 일어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며 그 참상을 이해시키려고 애썼다. 내전이 있기 전 그들은 평범한 목수, 학생, 제빵사, 체육교사였다. 이들은 아비규환으로 변한 고국에서 민간인 구호를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시리아 민방위대로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하얀 헬멧을 썼다. 시민들은 유일한 보호장구인 흰색 헬멧을 애처롭게 여기며 '하얀 헬멧'이란 애칭을 붙여 줬다.

2013년 스무명 남짓했던 대원은 3000여명으로 늘었고 6만여명의 귀한 생명을 구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145명의 대원이 목숨을 잃고 400여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내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신의 골이 깊어져 편 가르기의 늪에 빠져들기 쉽다. 하지만 하얀 헬멧은 부상자에게 "당신은 누구의 편인가?"라고 묻지 않는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인류를 구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전쟁터에 희망의 꽃을 피워내고 있다. 카디브 사진을 본 영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은 그에게 촬영 기술을 전수하고 장비를 지원했다. 전쟁 중에도 꿈을 잃지 않았던 그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자신의 영상이 전쟁을 멈추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 그 중에서도 교육현장에는 하얀 헬멧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교육을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반대로 교육 때문에 행복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의 현실은 너무나 각박하다. 한국 청소년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최하위이고, 시험 점수와 서열화로 형성된 학벌 문화의 벽은 견고하기만 하다. 점수 경쟁이 심해지면서 학생들은 러닝머신 위에 있는 것처럼 항상 뛰어야 하는 처지다. 포탄이 하늘을 가르고 콘크리트 잔해를 뒤집어쓴 사상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교실과 책상 위에는 상처받은 학생들이 많다. 내신성적을 위해 자퇴와 검정고시를 고민하는 학생, 자녀 교육 때문에 이민을 생각한다는 사람, 최고의 교육을 시킬 자신이 없어 출산을 포기한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하얀 헬멧은 무엇일까? 조정래 작가는 하루에 1.5명의 학생이 학교교육을 받는 시기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교육의 병폐 때문이라며 하얀 원고지 수만장을 채워 장편소설 '풀꽃도 풀꽃이다'를 세상에 내놓고 학생 구하기에 나섰다. 학생을 살리고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학력에 대해 고민하고 공유하며 작은 헬멧 하나씩 나눠 갖기 위해 오는 17일 오후 7시 조정래 작가 초청 강연회를 천안 학생문화회관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교육현장에 필요한 하얀 헬멧은 멀리 있지 않다.

소나무에게 사과나무처럼 열매 맺으라 하지 않고, 사과나무에게 장미꽃을 피우라 강요하지 말고, 풀꽃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는 교사, 학부모, 시민, 정치가,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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