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 수필가
[에세이]

오늘도 냄새 제거제 한 통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곤 시치미를 뗀다. 벌써 열흘째 요지부동이다. 한여름 폭염에 뜨겁게 달아오른 차 안에서 푹푹 썩어들어 가는 우유와 망고의 찌꺼기를 닦아내려고 갖은 수단을 다 동원했다. 그러나 지독하게 달라붙은 냄새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빨아댄 발판은 새것 같이 깨끗해졌지만, 냄새를 없애진 못했다.

오랜만에 이 시인님께서 오신다는 반가운 소식에 카페로 달려가 망고라떼를 샀었다. 승용차 보조석에 떡하니 모셔 오는데 느닷없이 사람이 뛰어드는 바람에 급정거하고 말았다. 모셔오던 망고라떼는 가차없이 발판으로 추락해 비참하게 엎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얇고 투명한 플라스틱 통 가득 넘실대던 낭만의 망고라떼는 속수무책으로 달콤한 눈물을 쏟아냈다. 모처럼 준비한 정성이 박살이 나고 말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차를 세울 수도, 닦아낼 수도 없었다.

늦은 밤 망고라떼로 뒤범벅이 된 차 안을 닦으려는데 이미 보이지 않는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깔끔하게 닦아버리기 어려웠다. 깊숙이 달라붙은 망고와 우유는 날이 갈수록 썩어서 상한 고기 냄새를 풍겼다.

문득 비리 법조인들이 생각났다. 요즘 부정청탁, 금품, 향응 수수 등에 검게 물든 몇 명의 법조인들의 부패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다. 사회 정의의 사도라 불리는 그들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의 광맥을 찾아 헤맨다. 그 행복이 재물과 권력, 명예에 있는 사람들은 늘 그것을 쫓고 쟁취하려고 한다. 행여 그 행복을 얻었다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욕망에 사로잡힌다면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덕목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늘 낮은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권력도, 재물도, 명예도 없는 삶이 지루하고 버거웠다. 가까운 친구들이나 이웃이 성공하여 떵떵거릴 때 소외감을 느꼈다. 그들의 행복이 마치 권력과 재물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졌다. 권력이나 명예, 재물에 대한 욕구가 생기자 이제껏 편안했던 삶이 흔들렸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수그러들었다. 웃음도, 따뜻함도, 정도 메말라갔다. 빗나간 행복의 동경은 나를 가두고 타인과의 소통을 방해했다. 그러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쌓은 지인의 종말을 보게 되었다. 그의 뻣뻣한 고개가 꺾이고 가족은 해체됐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헛된 욕망으로 가득 찬 마음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우유와 망고의 찌꺼기가 차 안에 눌어붙어 있듯 욕심은 내 안에 달라붙어 쉽게 나가지 않았다. 두 마음의 싸움은 질기고 고통스러웠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나는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차에 밴 냄새를 온전히 제거하기 위해선 특별한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자동차 내부청소 전문점으로 갔다. 그들은 나와 다르게 문제가 되는 부분을 몽땅 뜯어냈다. 깊이 배어버린 고질적인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특수한 맞춤처리 방법을 동원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열병을 앓고 있다. 무너진 사법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부패한 기득권 세력을 과감히 잘라내고 새로운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법조인들은 법을 집행하는 정의의 사도답게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가져야 한다. 또한, 겸손히 마다하며 받지 않거나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과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가져야 한다.

망고와 우유는 맛있고 향기로운 먹거리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향과 맛이 썩으면 고약한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고약한 냄새는 서둘러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악의 찌꺼기로 우리는 더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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