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억 신부(청주성모병원 행정부원장)
[아침마당]

우리 고유의 명절인 한가위를 맞이했지만 기쁨보다는 근심걱정 속에 명절을 보내야 했다. "지진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명절은 무슨 명절이냐"는 한 어르신의 말씀을 잊을 수 없다. 강도 5.8의 한반도 최대 강진과 300여 차례의 여진으로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더욱 마음을 힘들게 한 것은 이러한 재난에 대한 대비가 없었고 앞으로도 여전히 '안전불감증'이 되풀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국가 재난시스템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규모 5.8지진은 폭약(TNT)으로 치면 약 50만t에 달하는 위력이고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발생한 인공지진보다 50배나 강한 위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상청에 의하면 이보다 더 강력한 규모의 지진이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준비는 아무 것도 없다.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 대피 요령에 따라 침착히 행동하라"고 하면서도 정작 지진대피요령에 대해서는 소홀히 여겼다. 가르쳐 준 것도 "지진이 발생하면 탁자 밑으로 몸을 숨기라"고 잘못 가르쳐 줬다. 목조건물 위주에 내진설계가 잘 되어 있는 일본이나 미국과는 달리 콘크리트 건물이 많고 내진 설계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는 건물내부에 있다가는 더 큰 인명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진이 감지되면 무조건 밖으로 대피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지진 대처법을 생각해 둔 적이 거의 없다.

재난 시 대피장소로 사용되는 학교나 병원도 내진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무방비 상태라고 하니 속이 터질 지경이다. 이번 지진 발생 시에 순간적으로 접속이 몰려 먹통이 된 카카오톡과 KT 등 통신사의 일반 전화연결에도 문제가 발생됐고 국민안전처의 재난문자 서비스 역시 제대로 전송되지 못했다고 한다. 안전처의 홈페이지는 접속장애로 정보제공이 불가능해졌고 심지어 재난방송 주관사인 KBS 1TV는 정규프로그램에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었으니 할 말이 없다. '국민 불안해소와 피해규모 파악 등 대책에 만전을 기하라'는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늑장지시도 때를 놓쳤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있다.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다. 말로써는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재난 대피훈련을 현실에 맞게 해야 한다. 몸이 기억할 때 걱정이 없다. 시험 준비를 잘 한 사람에게는 시험일이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영광의 날이다. 자신이 갈고 닦아 준비한 것들에 대해 뽐내는 날이다. 혹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늦춰진 성공일 뿐이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두려움의 날이자 심판의 날 일뿐이다. 깨어 있는 사람은 준비하는 사람이고 준비한다는 것은 깨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성경에 보면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오는데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적고 있다. 그것은 그 날을 미리 알려고 궁리하는 대신 반드시 올 그날을 대비해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재난이 언제 올까를 알려 궁리하지 말고 언제 오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재난이 어디 지진뿐이랴! 우리는 결과치료보다 원인치료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일이 일어난 후에 부산떨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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