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낱말속 사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추석이 되면 참으로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다. 조선 말엽 김매순(金邁淳)이 쓴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 실려 있다. 한자어로는 '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가야물 감야물 단원장사가배일)'이다. '365일 일 년 내내 한가위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무엇이 한가위 같았으면 좋겠다는 것인가. 다름 아닌 '의식주' 가운데 '식'이다. '먹는 것'을 말한다.

추석 때는 수확의 계절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해 먹을 것이 많다. 당시 백성들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늘 배고픔에 굶주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먹을거리는 삶의 모든 것이었다. 추석은 하늘과 땅에 한 해 농사 잘 된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시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차례상을 차려 하늘과 땅에 제를 올린다. 이때 햅쌀로 송편과 술을 빚고, 닭이나 돼지를 잡아 요리를 하고, 텃밭 둑에서 탐스럽게 익은 과일도 수확한다. 이렇게 마련한 음식을 정성스레 차례상에 올린다.

사실 이처럼 차례상 차리기가 당시 형편상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한 집안이라도 차례상만큼은 풍성하게 차려야 했다. 빚을 내서라도 말이다. 그러하지 않으면 토지신과 곡신(穀神)이 노해 내년 풍년을 담보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뜻은 여기에 있지 않았다. 늘 굶주림에 시달렸으니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추석만큼은 실컷 먹어보자는 심산에 있었다. 특히 추석 때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늘 일에 시달렸던 백성들이 일시적이나마 해방된 날이다. 또한 구경조차 힘든 고기와 술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니까 풍성한 차례상의 명목은 풍요에 대한 감사와 기대이고, 속셈은 단 하루라도 배 터지게 먹어보고 놀아보자는 것이었다.

이처럼 추석 때는 먹고 노니 이보다 더 좋은 날을 바랄 수 있겠는가. 추석이 최고지. 여하튼 '더도 말고 덜도 한가위만 같아라'는 선조들의 고달픈 생활상이 담긴 속담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