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정권이 바뀌면 요정집 드나드는 사람도 싹 바뀌지만 밥 사는 사람은 그대로'라는 옛 유명 음식점 할머니의 일갈이 떠오른다. 한국인에게 밥자리는 특별하다. '밥'은 '밥'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밥상머리에 앉아 교육을 받았고 '밥 한번 먹자'가 대단한 인사 아니던가. 이즈음 추석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누구는 '밥 타령'을 안할 만큼 번듯하게 떵떵거릴 것이고, 누군가는 삶의 허방을 디뎌 '서러운 밥'을 먹는다고 고개 숙일 것이다. 보나마나 추석이후 도래할 '김영란법'이 밥상위에 떡하니 차려질 것인데 청탁금지법은 '법'의 문제인가 '밥'의 문제인가. 김영란이 던져준 '밥'은 이제 '끼니'가 아니라 생사 안녕을 묻는 '법'이 됐다.

▶추석 민심이 벌써부터 예사롭지 않다. 사방에서 정치가 지겹다고 한다. 차려진 밥상 위에서 숟가락 싸움질에 여념이 없으니 민생의 밥을 기대하기 어렵다. 600년 조선시대 내내 싸웠고 그 정치DNA는 현재진행형이다. 조선시대 붕당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질 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동인은 끊임없이 분열했다. 남인과 북인으로,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쪼개졌다. 대북은 골북, 육북, 중북으로, 소북은 유당과 남당으로 갈렸다. 100년 가까이 단일정당으로 존재해오던 서인도 공서·청서, 낙당·원당·한당·산당, 노론·소론, 벽파·시파로 나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예송논쟁이다. 이들은 자의대비 복상기간(상복을 입는 기간)을 3년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1년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싸웠다. 상복을 얼마동안 입는 게 뭐 그리 대수였을까.

▶젊은이들을 보라. 미지의 세계를 정복할 무모한 꿈을 키우며 맨몸 하나로 용감무쌍하게 뛰쳐나가고 있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어림없는 소리다. 무조건 아픈 게 청춘이 아니라, 꿈을 못 꾸니 아픈 것이다. 희망은 소망하며 붙들고 기다리는 것이지만, 꿈은 한없이 키우고 끝없이 좇는 것이다. 앞으로 엎어지는 것을 실패라 하지 않는다. 실현 가능한 것이 꿈이 아니라, 결코 이뤄질 것 같지 않은 것이 꿈이다. 젊은이들에게 꿈이 없으면 나라의 꿈도 없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정치 식충이들에게 '청춘의 밥'을 바라는 건 욕심일까.

▶조선왕조를 설계한 정치인 정도전은 스스로 '밥벌레'라고 했다. 밥벌레는 할 일 없이 밥만 축내는 밥버러지다. 그는 백성이 '법'이라면서 백성을 '밥'으로 보는 사대부적 퇴행성을 반성했다. 그리고 자신도 백성들의 밥을 빼앗아먹는 버러지(벌레)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개 숙였다. 작금의 정치인과 180도 다르다. '법'을 만들어 국민들의 '밥'을 챙겨야하는 정치의 온전한 정신이 희석되고 있는 건 비극이다. 죽으나 사나, 미우나 고우나 자기 당 사람만 싸고도는 정치, 상대의 견해에는 귀를 막은 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정치, 우린 지금 국민을 '밥'으로 보는 비참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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