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한 선배의 조카가 세상을 떠났다. 스물한 살이라고 했다. 처음엔 그냥 감기증세여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거니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간(肝)과 심장과 담낭과 비장을 갉아먹으며 폐부종으로 악화됐다. 고작 2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 2개월이 생몰(生沒)의 문턱이었다. 전날까지도 사람을 알아봤다는 걸 보면, 죽음이란 '별안간'이다. 매일매일 꽃을 피워도 시원찮을 판에 너무 빨리 졌다. 건너 건너의 사람, 촌수를 따질 수도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인데도 슬픔의 총량이 너무 컸다. 간헐적...
이발소를 갈지, 미용실을 갈지 고민할 때가 있다. 이럴 땐 뾰족한 수가 없다. 동네업소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곳이 얻어걸리길 바라는 수밖에. 90년대 초까지 호황을 누리던 이발소는 낡은 달력 위 비키니모델처럼 빛이 바래가고 있다. 대전시 동구 소제동(솔랑시울길)의 대창이용원은 원도심 뒷골목에 잔뜩 웅크리고 있다. 내비게이션을 켜도 그냥 지나칠 만큼 도심 속 외딴섬이다. 동네는 70년대 풍경에 멈춰있다. 머리 깎는 사람도, 머리 깎을 사람도 그대로 멈춰있다. 이 부동(不動)의 풍경을 물경 반세기 넘게 지켜봐온 이종완 옹...
▶아들은 어렸을 때 '큰병'을 앓았다. 6년간의 치료과정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중학생이 됐을 때 아들은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했고, 고교생이 되자 간호사를 희망했다. 처음엔 다짜고짜 뜯어말렸다. 얼마나 많은 소방관이 순직하고 있는지 일일이 ‘주검의 수치’를 들이대며 설득했다. 더더구나 간호사를 희망했을 땐 화까지 버럭 냈다. '간호사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며 폄훼도 했다. 하지만 아들은 수시모집 대부분을 간호학과에 올인했다. 그리고 철썩 붙었다. 그 고집이 얼마나 밉던지 며칠 동안 말조차 섞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
연예계는 비주얼시대다. 인형같이 생긴 사람 천지다. 그러다보니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그 몸매가 그 몸매다.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타박 받을 얘기지만, 그래서 나는 TV를 잘 보지 않는다.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못마땅했던 프로그램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건, 독특한 여배우를 발견한 이후부터다. 그녀는 팔방미인 박준면(39)이다. TV, 영화, 연극무대를 넘나들며 인간이 지닌 모든 끼를 발산하고 있다. 더욱이 그녀는 나와 호흡했던 정진영 전 충청투데이 기자(34·대전 출신·현 헤럴드경제 문화부)와...
▶나이 먹을수록 뚝뚝 떨어지는 게 몸값이다. 여자의 피부, 남자의 기력은 낙엽 떨어지듯 세월의 유탄을 맞는다. 몸값은 나잇값에 정비례한다. 뱃살이 늘고 주름살이 패여 나잇살을 먹으면 헐값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엔 몸값이 떨어지든 말든 만혼(晩婚)이 대세이긴 하다. 서른 살 중후반은 예사이고 10명 중 2명은 아예 연지곤지 찍거나, 상투 트는 걸 잊었다. 소득이 높아지니 독신생활도 제법 살만해진 거다. 노처녀, 노총각은 NO처녀, NO총각이 아니다. 老처녀, 老총각이다. 'NO'가 붙으면 성(性)을 잃었다는 얘기가 되니 반...
세상을 투명하게, 청렴하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부정청탁·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이 국무회의 공포는커녕 곧바로 수술대 위에 오를 처지다. '잉크도 마르기 전'이 아니라 아예 '잉크도 못 찍을’ 판국인 것이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법안이 만들어진 지 2년 반 동안 방치하다가 며칠 새 허겁지겁 조문을 완성한 것은 아무리 봐도 졸속이다. 졸속이니까 누더기다. 이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안이 아니다. 수정보완이 거론되는 부분은 △공직자를 넘어 민간 영역까지 확장한 적용 대상 △시민단체와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전문직 제외 △부정...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든다. 바람은 풍(風)이기에 손길, 눈길만 닿아도 흔들리는 것이다. 처녀총각들 겉바람 들게 하고, 과년한 여자 춤바람 나게도 한다. 간혹 날바람이라도 불면 궁둥이가 들썩 들썩이고, 물바람과 뭍바람은 사람과 사랑을 들쑤신다. 바람맞은 총각은 맞바람(마파람)을 피우고, 갯바람은 뱃사공의 술추렴을 부추긴다. 갈바람은 말라깽이의 쓸쓸한 육체를 쓰다듬고, 늦바람난 인간은 난봉 부리다 패가망신한다. 어디 이뿐인가. 식전 댓바람은 여편네와의 싸움을 부채질하고, 문틈사이 문바람은 뼈를 시리게 한다. 바람,...
시인은 30년 간 안성(1983년 이주)의 터주였다. 이곳에 머물며 한국 현대문학사의 거대한 산맥을 이루는 '만인보'와 서사시 '백두산' 완간 그리고 150권이 넘는 방대한 작품을 잉태했다. 아내와 결혼한 곳도, 딸을 낳은 곳도 바로 안성이다. 한 곳에 가장 오래 산 곳이기에 남다른 애정도 갖고 있다. 시인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방황, 좌절, 절망의 정서를 반영하고 중기에는 도전과 저항, 현실 참여의 시세계로 요약된다. 안성에서의 문학은 그 두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터전이다. 부인 이상화 교수의 정년퇴임에 즈음해 안성을 떠났...
벼린 펜끝, 벼린 가슴이 시(詩)에 녹는다. 그 문자의 묵직함은 단연코 세상을 울린다. 그리고 묻는다. 왜 고은 시인이 한국문단을 넘어 지구촌의 문웅(文雄)이어야만 하는지를….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고은(83) 시인과의 인터뷰는 바람 좋은 날, 김완하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와의 선문답(禪問答) 중 이뤄졌다. 김 교수는 고은 시인의 수제자다. 고은 시인은 경기도 수원시 광교산 자락에 산다. 광교산은 고려 고승 진각국사 혜심과 현오국사의 얼이 서려있는 곳이다. 30년간 안성에 둥지를 틀고 현대문학사에 거대 족적(足跡)을 남긴 ...
신임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최민호 전 행복청장 임명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기자 = 신임 국무총리 비서실장(차관급)에 최민호(59)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이 임명됐다고 국무총리실이 1일 밝혔다. 총리실은 신임 최 실장에 대해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두루 경험한 정통 행정관료 출신 인사●라며 ●일처리가 꼼꼼하면서도 대인관계의 폭이 넓고 리더십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충남 출신의 최 전 청장은 한국외국어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24회)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뒤 행정자치부 지방분권지원단장, ...
▶요즘 TV서 제일 잘나가는 두 남자가 있다. 나영석과 김태호 PD(프로듀서)다. 나 PD(1976년생·94학번)는 충북 청주에서 초·중·고교(덕성초-대성중-신흥고)를 다니고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김 PD는 충남 보령 출생(1975년생·94학번)으로 공주사대부고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왔다. 나 PD는 1박2일을 만든 이명한 PD(청주 출신)가 영국유학을 간 이후 바통을 이어받아 스타 예능PD 반열에 올랐고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로 명성을 쌓고 있다. 김 PD는 '무모한 도전'을 만든 권석 PD가 미국유학을 떠...
새벽 4시, 바람도 잠든 시간에 어둠 뒤켠에서 어르신 한분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허름한 파카점퍼를 입었는데 걸음걸이는 청년이었다. 빵총장, 담배꽁초 총장, 총장오빠, 나비넥타이 총장, 작은 거인, 영원한 현역, 지역의 큰 어른으로 불리는 김희수(87) 건양대총장이다. 얼굴과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보니 약간은 데면데면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밤을 꼬박 새우고 만난 터라 더더욱 그랬다. 영하 4℃의 벼린 시간이 흐르는 병원 응급실 앞이었다.그는 악수를 끝내자마자 당직상황실(원무)로 향했다. 그리고는 직원이 ...
▶살아오면서, 내가 저지른 '무식한 짓' 세 가지를 대라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여행'이다. 2010년 5월엔 대전에서 청주까지 45㎞를 무작정 걸었다. '대충청방문의 해'라는 타이틀을 달고 12시간17분 동안 도보했다. 마지막 목표지점에 도달했을 때, 동행한 여자 기자(記者)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 (거의 탈진상태였다) 난, 그냥 웃었다. 2010년 7월엔 대전에서 평택까지 자전거를 탔다. 시속 10~15㎞로 93㎞의 거리를 달렸는데 9시간 넘게 걸렸다. 이 얘기를 해줬더니 '서울 촌놈들'이 비웃었다. 2011년 3월엔 대...
2월의 길목은 매웠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천변(川邊)에 찬바람이 불자, 바람은 좌우로 흔들리면서 이내 얼었다. 그만큼 영하의 온도는 36.5℃도의 체온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여명(黎明) 또한 환하게 밝아오는 것처럼 서둘렀지만 이내 시들시들 채도를 내렸다. 이른 아침, 한사람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 이렇게 별스러웠던 까닭은 인터뷰이(interviewee)가 독특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괴짜CEO, 맨발전도사, 누드족(足)장, 마라톤 CEO, 팔색조 경영인이라고 불리는 조웅래(57) 더맥키스컴퍼니 회장이다.조 회장은...
고은 시인의 제자인 김완하 한남대 교수와 장노현 박사, 이정오, 임충빈, 방효필 시인 등이 지난 7일 고은 선생이 머물던 안성 자택을 찾았다. 이 고택은 고은 시인이 2013년 8월에 수원으로 이주해 간 이후 비어 있는 상태다. 특히 이곳은 고은 시인이 1984년 안성으로 내려오면서 30년 동안이나 머물며 한국 현대문학사의 거대한 산맥을 이루는 ‘만인보’와 서사시 ‘백두산’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작품을 잉태한 곳이다. 고은 시인은 한 곳에 무려 30년을 살았던 이곳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인식하고 고택의 ...
▶눈을 감고 잘 수가 없다. 그래서 물고기처럼 눈을 뜨고, 돌고래처럼 잠시 동안만 깊은 잠을 잔다. 마치 텃밭의 푸성귀들이 가로등불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듯이. 동면(冬眠)의 계절엔, 마땅히 잠드는 게 순리인데 밤이 되면 총총한 별만 새고 있다. 그래도 양계장의 불야성(不夜城)만큼 절박하진 않으니 다행이다. 닭은 일 년 내내 쉬지 않고 알을 낳고, 육계(肉鷄)는 40여 일간 잠을 자지 않고 사료만 먹는다. 그리고 살이 피둥피둥해져 살만해지면 사람이 잡아먹는다. 닭이 편안히 잠들 수 있는 때가 오로지 '죽음'뿐이라는 게 잔...
▶이완구, 그가 충청도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서른한 살에 최연소 경찰서장을 역임해서도 아니다. 그가 포스트JP(김종필)여서도 아니다. 그가 세종시 사수를 위해 도지사직을 버려서도 아니다. 또한 그가 중앙무대에서 충청도 상징이어서도 아니다. 청양(靑羊)의 해에 청양사람이 총리로 발탁됐기 때문만도 더더욱 아니다. 우린 그의 강단(剛斷)에 주목한다. 그의 사교성에 주목한다. 그의 정치력에 주목한다. 그는 싸움질만 하던 정치에 포옹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보수와 진보의 룰을 깨고 악수하는 법을 가르쳤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
▶'김대중'은 말을 잘했다. 기승전결이 있는 어법은 짧았으나 강했다. '노무현'은 열심히 '말'을 했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며 투덜댔으나 독했다. '이명박'은 열심히 '일'하자고 했다. 마치 불도저 같았다. 그런데 너무 일만 강조하다보니 공무원들만 죽어났다. 2013년 2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했을 때 나는 기꺼이 박수를 보냈다. 그는 대처였고 메르켈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들이 커피나 홀짝이며 '덜 일하고 덜 벌자'던 때라 더욱 그랬다. 당시, 남자들의 정치는 협잡과 야합, 모략과 반목이 조류였다. 죽기 살기...
▶세상 돌아가는 꼴이 갑갑(甲甲)하다. 그 진원지는 비행기다. 고작 땅콩 몇 알, 라면 한 봉지, 티켓 한 장 때문에 갑(甲)질 횡포가 터지고 있다. '땅콩 회항' 조현아 부사장은 악어의 눈물로 사죄했지만 결국 수형번호 '4200번'을 달고 감방에 갔다. '라면 상무'로 악명을 떨친 포스코 간부는 라면이 짜다며 승무원 얼굴을 때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런가하면 모 의류회사 회장은 항공기 출발 1분 전에 나타나 게이트를 열어주지 않는다며 항공사 직원을 신문지로 때려 '신문지 회장'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또 한명의 기내 진...
▶와신(臥薪)하지 못했다. 그래서 밤새도록 꿈결에 담배를 피웠다. 꿈에서 피우니 밤이 낮처럼 밝았다. 먼동이 터오는 시간이 되서야 금단의 멍울이 가셨다. 허파꽈리가 타들어가도록 양껏 빨았더니 새벽공기는 쓰디썼다. 날숨과 들숨 또한 괴로웠다. 이제 담배와 이별할 시간이다. '4500원×31일=13만 9500원, 13만 9500원×12개월=167만 4000원, 167만 4000×20년=3348만원'이라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담배 끊는 것이 타당해졌으니 도리가 없다. 물론 솔직하게 말하면 더러워서 끊는다. 어두운 골목과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