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제일 먼저 성호를 긋는다. 오늘 하루도 성모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헛된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평화를 은총으로 내리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 별 탈이 없이 순조로운 하루를 영위한다는 것이 어떤 은총보다 크기에 제일 먼저 평범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햇살이 창가를 비추기도 전인 신 새벽이면 식탁 한쪽에 조용히 앉아 커피를 내린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가 유리 주전자에 차오를수록 온 집안도 그윽한 커피 향으로 채워지고 먼저 페부까지 깊숙이 향을 들이마신 후 맛을 음
정(情)이라는 글자는 정서적으로 우리 문화를 지탱해 온 가장 근본이 되는 글자가 아닌가 싶다.情자는 사전적 의미로 ‘뜻’이나 ‘사랑’, ‘인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마음 심)자와 靑(푸를 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靑자는 우물 주위로 푸른 초목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맑다’나 ‘푸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사랑’이나 ‘인정’은 사람의 가장 순수한 마음일 것이다.중학교 졸업 무렵 한문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을 하시면서 情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부수인 심방변(?)을 가지고 너희들과 나는 졸업하면
"다시 지금은"이란 한 문장에 붙들려 책장을 넘기지도 덮지도 못하고 있다. 글은 짤막한 다섯 문장뿐이다. 작가의 가슴 밑바닥에서 끌려 나왔을 문장은 짧지만 강렬하다. "다시는 아무것도 빌지 않게 해달라고/ 스스로에게 빌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생각을 멈추게 한다.지난 기억 속 한 꼭지에 머문다. 인간의 몸체가 한없이 보잘것없는 물체라는 걸 경험한 날이다. 한순간 마디가 잘린 나의 손가락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참으로 고왔다. 날씬한 몸매에 키는 나보다 두상 하나는 더 컸다. 입원 내내 그의 눈물을 본 기억
온천지가 꽃이다. 어스름 달빛 아래로 살구꽃이 피어나고 눈 부신 햇살 사이로도 제비꽃은 피고 있다. 겨우내 꽁꽁 닫고 있던 대지의 빗장을 활짝 열어젖히고 여린 생명은 큰 힘으로 불쑥 솟아났다. 나지막한 산마루에서도, 높다란 구릉에서도 새 생명이 초록의 촉을 세우고 꽃으로 환하게 피어나니 신비한 생성의 물결이 온 세상에 출렁인다. 꽃이 피어난 곳마다 각양의 향기를 분분히 날리며 봄의 완연함을 알린다.만화방창 절기 속에 심신을 진탕 빠져보려 떠들썩한 상춘객들의 무리 속으로 나를 던졌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무더기를 이루며 앞다투어
해마다 4월 달력 어느 날에 파란 펜으로 몇 년이라는 표시를 해 둔적이 있었다. 공직생활 몇 년이라는 표시다. 고장도 없는 저 세월은 후딱 지나가 공직생활 40여년을 마감한지도 벌써 2년째다.고등학교 시절 대학예비고사(지금의 수능시험)를 보고나니 담임 선생님께서 공무원시험에 응시해 보는 게 어떠냐고 하시면서 응시원서를 주셨다.초등학교를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다 전기불도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들어 온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온 나로서는 학교생활기록부 상의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늘 교사, 공무원, 은행원 등이 고작이었다. 그 인연
[충청투데이 심형식 기자] 주인이 떠난 집은 사람의 온기도 사라진다. 그 집에 더는 머물 자손이 없다. 작은 산촌의 역사를 기억하는 마을 주민들이 가무내에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으랴. 마을에는 일손을 보탤 남자도 없다. 큰아버지가 마을의 유일한 남자였지만, 이제 당신도 더는 머물 수 없단다. 병이 깊어 요양원으로 모신다는 사촌의 말이 아득하게 들린다.내가 자라온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 가무내는 코흘리개 아이의 성장과 태양 아래 까맣게 그을린 부모님의 삶도 잊히리라. 동그란 문고리에 지문처럼 남아있던 허리 굽은 할머니의 흔적도 사라진
내 고향 마을 어귀에 녹시래(鹿柴來)라는 고개가 있다. 응봉산 정상을 조금 빗겨 난 산등성이에 구불구불 황톳길인 녹시래는 마을 사람들의 출타할 때 나들목이며 관문이었다. 눈보라가 혹독하게 몰아칠 때도, 땡볕 무더위 속에서도 천둥벌거숭이 서너 명이 모여 녹시래를 넘을 때면 숨을 할딱이면서 왜 그리 뛰어올랐는지. 진달래 꽃물로 둘레 산이 붉게 물드는 봄이면 꽃 무덤 속에서 문둥이가 나타난다는 속설로 고개를 넘을 때마다 오금을 저리게도 했던 곳이다.철철이 변모하는 계절의 향연도 눈 호강이 됐고 특별한 놀잇거리가 없던 터라 그곳은 동년배들
학교종이 땡땡땡. 동요의 한 소절이기도 하지만 전기가 없던 시절 학교 종소리이다. 지난 설 연휴에는 시골집에서 얼마 안 떨어져 있는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녀왔다. 지금은 폐교가 되어 이곳이 초등학교 옛터라는 알림 표지석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교실 건물은 사라진 운동장에 홀로서서 문득 스쳐가는 잔상들을 생각하며 추억에 발을 담가본다.코흘리개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왼쪽 가슴에 옷핀으로 하얀 손수건을 매달고 입학식에 참석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하다. 지금이야 화장지 같은 위생용품이 흔하지만 그 당시에는
빗줄기가 거세진다. 빗살에 작은 물방울이 생겼다가 모형을 잡지 못하고 사라진다. 무심코 자동차 유리창에 맺히고 사라지는 빗방울에 시선이 머문다. 자동차 와이퍼가 매몰차게 물방울을 밀어내지만, 신이 내린 빗줄기를 어찌 막으랴. 물방울은 유리창 표면에 일어난 생성과 소멸이 마치 인간사와 비슷하다.물방울이 빗살에 맞아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뒤이어 또 다른 물방울이 몸집을 키운다. 마치 실패에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자 애쓰는 인간의 모습이다. 물방울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이 얼비친다. 우레를 동반한 태풍이 지나고 빗살이 부드러
순간이었다.발을 내딛는 순간 삐끗하며 균형이 흔들리는 걸 수습하기도 전 땅바닥에 몸은 벌써 엎어졌다. 넘어진 그 순간 아픔보다는 거릿집 앞에서 넘어진 몰골을 누군가 보고 있을 외간의 눈총이 먼저 얼굴 위로 전해지는 것 같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처한 상황이 꿈이길 빌었고, 현실이면 이 순간이 찰나처럼 지나가길 간절히 원했다.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쪼그리고 앉아 무릎의 흙을 털어냈다. 누구도 달려와 부축하지 않는 걸 봐서는 인적이 뜸한 시간이라 아무도 나를 본 것 같진 않았다. 일어나 아무 일도 없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아직도 생생한 아궁이 땔감을 하던 고리타분한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지금이야 어엿한 입식부엌으로 개조를 했지만 27년 전만 하더라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도 하고 밥을 해먹던 시골 고향집, 아직도 그 고향집에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과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땔감을 하던 시절, 겨울이 오기 전에 땔감을 준비하는 것이 월동준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시되는 중요한 일이다. 집에 땔감이 그득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땔감이 충분해야만 한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겨
충북의 국회의원 정수는 8명이다. 청주시 4명, 충주시 1명, 제천·단양 1명, 음성·진천·증평 1명, 괴산·보은·옥천영동 1명이다. 그중 동·남부4군이라 불리는 괴산·보은·옥천·영동의 박덕흠 국회의원 국회윤리위특위 제소 건으로 시끄럽다.박 의원은 지난 2012년부터 8년간 국회교통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피감기관으로부터 가족회사 일감 수주 논란과 이해충돌 논란으로 징계안이 회부되었다. 논란이 일자 2020년 9월 국민의 힘을 탈당하였다. 수면하에 가라앉았던 사건은 15개월이 지난 2021년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