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한편에 읽어야 할 책이 쌓인다. 문인들이 보내온 작품집과 출판사에서 보내온 정기구독에 각종 자료집까지 수북하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가 필요한지 알기에 책을 쉬어 묻어둘 수가 없다.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특별한 책을 만나는 즐거움은 흔하지 않다.갈색 표지의 ‘불경스러운 언어’란 제목이 시선을 끈다. 옛것이 좋아 어디든 수시로 떠나기를 마다치 않던 화자는 우리의 문화 예술에 관한 글을 많이 쓴다. 계간 ‘수필세계’ 주간은 화자의 필력을 믿고 지면을 무한 제공했다. 그 기간이 무려 8년이다. 작가는 이
이랬으면 참 좋겠다. 섣달은 한해의 끄트머리 달만은 진정 아니다. 희망을 준비하고 해 오름을 맞이하는 초석 달이라 이름하면 좋겠다. 애달파하지도, 회한의 눈물도 흘리지 말고 흐뭇하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해를 매듭지었으면 좋겠다. 세파에 헐떡이며 한숨짓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비록 이루지 못한 삶의 무거운 등짐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했다 해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평안하다고 꼭 믿었으면 좋겠다. 다시오는 새해에는 희망찬 꿈을 향해 달리는 발걸음 먼저 빨라지고 매사에 감사하는 날이 많아 바빠지면 좋겠다.도전의 발상을 묶어버리던 포기와
얼마 전 주말에 시골에서 김장을 담가가지고 왔다. "이젠 1년 농사 다 지었다. 비가 오나 눈이 와도 아무걱정 없다" 봄에 씨 뿌리고 잘 키워온 알곡의 가을걷이가 끝나면 연중 마지막 행사인 김장을 하고 난 후 엄청 흐뭇해하시면서 어머니가 해마다 반복하시는 말씀이다.김장은 한해 농사의 결정체다. 무와 배추는 물론 고춧가루, 갓, 대파, 쪽파, 마늘, 생강 등은 직접 농사를 지어서 준비하고 찹쌀 죽과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서 육수를 만드느라 준비도 만만치 않다. 다만 액젓과 새우젓 정도만 시장에서 사다가 한다. 특히 새우젓은 생새우를
품위가 무엇이랴. 당의 자락이 펄럭이며 흙바람을 일으킨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도 뒤를 따른다. 흙바람을 잠재우던 비바람이 한순간 피바람으로 몰아칠 기세다. 지엄한 중전의 자리는 걸음새부터 품위를 지켜야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녀의 다급함과는 달리 왕자들은 천하태평이다.어느 부모가 자식의 일을 허투루 여기랴. 드라마는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자식을 키우고 지켜내는 어미의 치열한 삶을 이야기한다. 왕비라 하여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민초의 어미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어쩌면 백성의 삶보다 더 가혹하고
눈을 뜨니 작은 창가에 놓인 화병의 하얀 꽃 한 줌이 새 아침을 환히 밝히고 있다. 수확 시기를 놓친 억센 부추를 버릴까 하다 망울진 꽃대 몇 줄기가 보이길래 잠들기 전에 심심소일로 한 줌 집어 화병에 꽂았었다. 꽃이라 하기엔 너무 허접하고 가냘픈데다가 음식 재료로서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 치부했던 부추에서 이렇듯 애잔하고 오묘한 끌림이 있을 줄 진정 몰랐다. 어젯밤 화병에 꽂을 때만 해도 힘없이 축축 늘어지던 대궁이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목을 세우고 탄성처럼 꽃망울을 터트린 자태가 가히 경이롭다.멀찍이 서서 바라보다가 다가와 보니
맑고 푸른 하늘, 대지위의 만물이 성숙을 알리는 계절 완연한 가을이다. 그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던 한여름을 물리치고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을 느낄 정도이니 만추에 가까이 온 것 같다.뭐니 뭐니 해도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이른 봄에 씨를 뿌리고 더운 여름에 잘 자라도록 땀 흘리며 가꾸어 이제는 알차게 잘 영근 알곡을 거두는 기쁨을 누릴 때다. 지금은 콤바인이 대세이지만 어릴 적에는 벼를 낫으로 베어 묶어서 햇볕에 말리고 발로 구르는 옛날탈곡기에 알곡을 털어서 방아를 찧었던 기억도 새롭다. 또한 과일, 콩, 들깨 등 각종 농산
소년의 행동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의 표정을 지나칠 수 없어 행동을 주시한다. 미동도 없던 어깨가 살짝 흔들리는 듯하다. 무표정한 모습과 달리 두 손에 쥐어진 가위는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다. 가위의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축하 무대에 오른 소년 품바가 온 신경을 붙잡는다.가을을 맞아 지역 축제가 한창이다. 혜안글방 도반의 문학공모전 수상차 옥천을 거쳐 스승님의 문학상 수상식장인 음성으로 향한다. 수상자들을 축하하고자 품바들도 출동한다. 중년 품바의 화려한 입담에 객석 이곳저곳에서 폭소가 터진다. 하지만, 젊고 앳된 품바의 ‘너
밥 한 끼 먹자는 연락이 왔다, 문학단체에서 정서를 나눈 지가 오래됐지만 특별한 친분으로 가까이해보지는 않던 터라 그의 초대가 처음엔 좀 부담이 갔다. 단체 소통 창을 밥 한 끼라 이름하여 나 외에도 두어 명을 함께 한 기별이 고마워 흔쾌히 대답했다, 밥 한 끼라는 단어 하나가 금방 아궁이에 불 지펴 가마솥에서 지어낸 밥 한 사발을 대접받은 것처럼 구수하여 쾌히 승낙하고 나니 벌써 마음이 훈훈해진다.요즘 추세로 볼 때 밥 한 끼 하자는 말은 진정성 없는 상투적 인사로 치부된다.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조차 거리두기를 하며 살아온 날들이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 지나갔다. 명절하면 예나 지금이나 마음이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어릴 적에는 새 옷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다림으로 성장해서는 부모 형제자매와 보고 싶은 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기다려지기도 한다. 또 온가족이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으며 그동안 못다 한 얘기도 나누고 웃음꽃도 피우는 그야말로 이보다 마음이 더 풍요로울 때는 없을 것이다.이번 추석명절은 코로나19의 여파로 2년여의 거리두기 끝에 거리두기 없는 명절로 이동하는 귀성객이 많아서인지 고속도로 등 전국의 도로가 혼잡해
도통 이해되지 않는 장소다. 유동인구 많은 도시 대로변에 있어야 할 시설이다. 최근 고소한 빵과 쌉싸름한 커피를 즐기고자 자주 찻집을 찾는다. 식사하고 맥주집으로 향하던 발길이 자연스럽게 찻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오늘 찾는 찻집은 그 위치가 예사롭지 않다. 더구나 지금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시각이다.장소를 듣고는 뜨악하다. 함께 한 지인들 표정도 나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가 이끄는 곳으로 향한다. 작은 하루살이도 기겁한다는 동행자나 평소 겁이 없는 나도 그곳을 지나는 불편함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가고자 하는 커피숍은
어린 시절 고무신은 그 무엇보다 더없이 소중한 신발로 지금의 값비싼 구두와 운동화 이상으로 소중히 다루었다. 고무신하면 검정고무신과 하얀고무신이 일반적으로 검정고무신은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이 주로 신었고 하얀고무신은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신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읍내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할아버지를 따라 야산을 넘어 구불구불 먼지 나는 비포장도로를 한참을 걸어서 시장엘 간다. 물론 헌 고무신을 신고 그 먼 길을 할아버지 따라 장에 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읍내 장구경도 하고 먹을 것도 얻어먹고 갖고 싶은 것도 할아버지를
요란한 새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비 내린 새뜻한 초목들 사이로 소리 나는 쪽을 살펴본다. 벚나무 가지를 타고 작은 새 두 마리가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나의 단잠을 깨운 범인들이다. 그 소리뿐이 아니다.여느 날보다 오늘은 매미 소리가 귀가 따가울 정도다. 며칠을 살고자, 아니 한 번의 짝짓기를 하고자 긴 시간 침묵한 한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목청껏 울어댄다. 곤충의 소리는 종족 보존을 향한 구애의 소리라고 말한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간절함의 소리란다. 하지만, 온몸으로 된더위를 이기는 할머니에게 곤충의 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