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함'과 '사랑'은 엄연히 다르다.대상이 미(美)의 절정에 있을 때보다 고뇌(苦惱)의 바다에 빠져 있을 때 더욱 가까이 있는 것이 곧 사랑이다.고뇌에 빠져 있을 땐 대부분 푸석푸석하고 초라해지기 마련인지라 좋아했던 사람도 한마디 위로의 말만 남기고 그냥 떠나버리기 일쑤다.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그 초라함을 나의 초라함으로 체험하는 동시에 한
심술궂은 봄바람이 꽃잎을 흔들 때마다 밤새 내려앉은 이슬이 후두둑 텃밭에 떨어진다.하루가 다르게 훌쩍 커 버리는 봄나물들은 텃밭이 비좁은 듯 아침 해가 뜨자마자 기지개 켜기에 바쁘다.증조할머니가 증손자 대학 보낸다며 굽은 허리를 또 다시 품팔아 심어 놓은 채소들, 열살배기 충석이가 대학가려면 뒷동산 높이만큼 쌓여야겠지만 충석이는 동생 다희(6)의 군것질거리
왜소하지만 단아하다.오히려 강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배어 있다는 것이 정확하다.검은 옷을 즐겨입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은 모습, 사무적인 말투에 보일 듯 말 듯 절제된 미소가 '교육계의 철녀(鐵女)'란 애칭을 짐작케 한다.1961년 교직에 첫 발을 내딛고, 명함 한 귀퉁이에 동부교육장이란 직함을 들여 앉히기까지 40여년.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별무리없이 순탄
"간첩이야!"뒤통수를 후려치는 외마디 소리에 조사팀은 깜짝 놀라 멈춰섰다.간첩이 출몰했다고? 아직 조사일정은 4일이나 남았지만 여기 첩첩산중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서둘러 장비를 꾸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게 급선무다. 산림 생태 조사팀장 김관수(金寬洙·당시 66세) 교수가 3명의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5㎞는 족히 떨어진 인근 마을로 내려갈 채비를
염홍철 대전시장이 양복 대신 정열의 자주색 유니폼과 운동화로 무장하고 탐탐이(서포팅 때 치는 북의 일종)를 들쳐 멨다.서로 반목했던 시의원들이 2인 1조가 돼 휴지폭탄(두루말이 휴지를 말아 던지는 서포팅 용품)과 홍염(붉은 빛을 내는 폭죽의 일종)을 만든다.돈이 많든 적든, 무슨 직업을 갖고 있든 상관없이 경기장에 모인 시민들은 브라스밴드의 '섭팅곡'(서포
"그동안 대전은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이 조금씩 노력을 한다면 그런 오명은 언제든지 떨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31일 대전시립미술관장으로 선정된 김영재(金永材·55·충남대 미대교수·사진)씨는 "미술관장에 선정된 이상 대전시가 행정수도가 아닌, 문화수도로 발전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33년 동안 축적해 온 행정경륜을 바탕으로 지역의 중소·벤처기업인을 위한 신기술 발굴과 기업지원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27일 충남테크노파크 이사회에서 신임 본부장으로 추대된 강철수(姜哲洙·57·사진) 본부장은 소감을 이 같이 밝히고 "신기술 혁신의 요람인 충남테크노파크를 지역경제 활성화의 원동력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포부를 말했다. 충남테크노파크 발전방안
"원장님, 이런 거 꼭 해야돼요?"침대에 환자복을 입고 어색하게 누워있는 한 중년 간호사는 대학시절에나 했을 법한 환자체험에 짜증이 난다.그러나 군인처럼 꼿꼿해 보이는 원장이 지켜보고 있어 꼼짝 않고 후배 간호사가 찔러대는 주사기에 몸을 맡겨야 할 형편이다.원장이 바뀐 이후 의료원에서는 친절교육, 휠체어 체험, 붕대감기에다 별도로 환자와의 대화의 시간을 갖
"바르게살기운동의 3대 이념인 진실, 질서, 화합정신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겠습니다."26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7대 회장에 재선임된 이시찬(李時燦) 바르게살기운동 대전시협의회장은 "2만7000여 회원들의 단합을 통해 이웃사랑 실천운동을 범 시민운동으로 승화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이 회장은 "지난 4년 동안 임원과 회원들이 보여 준 정성어린
빗발치는 총성, 화염이 자욱한 전장에 앳된 한 이등병이 섰다.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절망의 공간에서도 소년은 언젠가 고향을 빛내는 사람이 되겠노라 당돌한 꿈을 곱씹었다.34년이 흐른 뒤 그 소년의 어깨 위에는 꿈을 압축해 놓은 듯 북극성 만큼이나 빛나는 네개의 별이 나란히 도열했다.이등병에서 대장에 이르기까지 한국 군대사(史)를 새로 쓰고 격동의 정치
'핏줄이닷….'잉크 묻은 펜 속에 일상이 넘쳐난다.몇 번씩 마주쳤을 이야기들은 문사(文士)의 손 끝에서 정제된 글귀로 종잇장에 내리 앉는다.시상(詩想)이라야 엄숙하지도 그렇다고 현란한 기교도 없다. 하늘 아닌 땅을 밟고 바라본 나와 이웃들이다. 지난 91년 즐거운 일탈을 찾던 몇몇 20대 청년 문학도들은 그렇게 문학동우회 '문청기르마'를 세상 밖에 내보였다
"충남의 새로운 역사를 우리가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연구활동에 전념토록 하겠습니다."12일 충남발연구원 제4대 원장에 취임한 오제직 원장은 취임 일성을 이같이 밝히며 "개인적인 영광에 앞서 고향을 위한 마지막 봉사로 알고 충남발전을 위해 힘을 바쳐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오 원장은 지난 82년부터 공주대학교 교수와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학교발전과 지
"문화원장 생활에서 벗어나 이제는 본업인 문인화가로 돌아갈 수 있게 돼 홀가분합니다. 이제 제 본업을 전수할 기회를 마련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대전 서구문화원 초대 원장과 2대 원장을 지내고 오는 27일 퇴임을 앞두고 있는 김진원(54·사진) 원장은 지난 95년부터 8년간 서구문화원을 이끌어 온 감회가 남다를 만함에도 '홀가분하다'는 표현을 썼
주인장의 갑갑한 속을 미뤄 짐작이나 하듯 칼바람이 창문에 부대끼며 갈 곳을 못 찾아 비명을 지른다.뇌경색에 이은 두 차례의 고관절 골절로 요즘 그의 생활은 '잠시멈춤' 상태다.맨손으로 시작해 행정가의 CEO시대를 개척하기까지 일평생 일에 묻혀 살아 온 사람에게 바깥 출입이 여의치 않으니 그 속내 얼마나 숨막힐지 짐작코도 남는다.그래도 꽃피는 춘삼월이면 언제
심장이 터질듯한 격렬함이 온 몸을 휘감는 순간.'샤먼'(shaman)의 심장들은 100m를 14초에 막 완주했을 때 느끼는 숨막힘과 극도의 갈증을 훌쩍 넘어 온 몸을 가능한 모든 각도로 빠르게 가누어야 하는 파워 재즈의 강한 비트 속으로 또다시 미끄러져 쿵쾅거린다.밤 11시 대전시 동구 용전동 뉴스 나이트 클럽.3인조 라이브 여성 DJ팀 '샤먼'의 등장으로
충북 청원군 남이면 외천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농가들 틈으로 소담한 집 한 채가 뽕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겨울을 나고 있다.마치 낯선 객이라도 잠시 들러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을 맛보라는 듯 '산장의 여인'이라고 씌어진 큼지막한 문패가 반갑게 맞아주는 그 집은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운 곳'이 아니었다. 낮은 곳을 터전삼아 나누고 베푸는 산장지기 권혜경(權惠
색소폰 선율이 잿빛 조명에 흘러내린다.보조라야 컴퓨터 반주가 전부지만 정직한 음색을 이리 저리 조율하는 것은 그의 능력이다.사람들 술잔 속에 흥을 돋구는 '딴따라 인생'.그의 애달픈 사모곡이 시작됐다.재즈 아티스트 윤민호(57·동구 판암동)씨는 오늘도 3평 남짓한 무대 인생을 풀어놓는다.자욱한 담배연기가 짓누르는 곳이지만 그의 색소폰 음(音)은 취객들의 시
길이 아니면 가질 않았고 까마귀 노는 곳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등 따습고 배부른 야합보다는 굽이굽이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으며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쳤다.격동의 세월을 고스란히 이고 지고 살아온 인생, 그래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후회는 없다.일평생 민주와 민족이라는 화두를 좇은 송좌빈(宋佐彬·79) 옹, 칼바람이 한껏 기세를
노경성(盧京星·35)씨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어제 분수를 통분하지 못해 불안해하던 한 학생이 자습실에서 혼자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방법은 알려줬으니 답을 찾는 것은 아이의 몫이다.수학은 세상사와 달리 정답이 하나뿐이기에, 아무리 복잡해도 끝이 분명한 법이다.학교에서 수학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중학생들을 위해 2년째 수학 클리닉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노씨에
태초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미지의 땅을 밟는 순간, 온 몸을 타고 오르는 전율에 정신이 아찔했다. 마치 축복하듯 온 누리를 은은하게 내리 비추는 달빛과 새하얀 눈빛이 맞부딪쳐 뿜어내는 오묘한 파노라마는 무아지경의 극치를 연출했다. 1982년 11월 2일 오후 6시 무렵, 수만년 처녀성을 간직한 히말라야 고줌바캉(ngozumbakang·티베트어로 세 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