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미사일(ICBM 대륙간탄도)을 쏘던 새벽, 자다 말고 깜짝 놀랐다. 미사일이 무서웠던 게 아니다. 군대에 있는 큰아들이 첫 휴가를 나오는 당일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188일을 기다렸는데 행여 휴가가 취소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물론 혹자들은 이 난리 통에 무슨 휴가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휴가는 휴가다. 아들은 오매불망 이날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생애 처음 6개월 간 감금 아닌 감금을 당했으니 바깥세상이 궁금한 건 당연하다. 그 마음을 알기에 북한의 미사일은 내 심장을 겨눈 화살 같았다... [나재필 기자]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하는 '지랄 총량'이 정해져있다고 한다. 김두식 한동대 법대 교수의 썰(說)이다. 어떤 사람은 그 지랄을 사춘기에 다 쓰고, 어떤 사람은 뒤늦게 찾아온 지랄을 죽기 전까지 소진한다는 게 요지다. 지랄(간질)은 단어 자체의 어감이 경박스럽지만, 법석 떨며 얄궂게 하는 행동을 빗댄 순우리말이다. 한마디로 발작이다. 이왕 '지랄' 얘기가 나왔으니 한 번 더 복습하면 지랄은 끝까지 지랄해야 끝이 난다. 지랄 같은 일들이 쌓이면 숨이 턱턱 막혀오고 흔적이 남는다. 지랄병은 사회가 미쳐 돌아가기 때문에 ... [나재필 기자]
▶옛날엔 버릴 것이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은 자연에서 출발해 자연으로 돌아갔다. 나무와 돌, 흙으로 만든 집은 부서지면 다시 흙의 품에 안겼다. 먹다 남은 음식물도 동물의 먹이로 현신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완전한 소진이자 재탄생의 윤회였던 것이다. '쓰레기'라는 말은 근대화 이후 나일론, 비닐, 플라스틱, 콘크리트를 사용하면서 시작됐다. 쓰레기가 많다는 것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찌꺼기다. 일찍이 지금보다 더 따뜻한 겨울을, 지금보다 더 시원한 여름을 보낸 적은 없었다. 물질문명의 다양한 이기(利己)를 많은 사람들... [나재필 기자]
▶"아, 월급쟁이 못해먹겠다. 나도 장사나 한번 해볼까. 장사하는데 임자가 따로 있나." 직장 스트레스에 찌든 월급쟁이라면 한번쯤은 상상해봤을 법한 그림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결심이 잔인한 결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괜찮은 사업 아이템 잡아서 점포만 차리면 '대박'이 날 것 같지만, 현실에 부딪혀보면 '쪽박' 찰 확률이 더 크다. 보통의 사람들은 '사업'에 '돈'을 맞추지 않고, 가지고 있는 '돈'에 '사업'을 맞추기 때문이다. 망하는 집(터)은 항상 망하는 이유가 있다. 시장조사는커녕, 앉아서 계산기만 두드리다 뛰어드니 ... [나재필 기자]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비가 내린다. 여명의 빗물은 달디 달다. 비가 올 때는 여운이 더 깊은 법이다. 적당한 습기는 생각의 침전을 통해 부풀려진 상황을 최적화시킨다. 어둠속에서 달린다는 건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일단 짐승보다 사람이 무섭다. 성큼 지나치는 사람의 그림자는, 짐승의 그림자를 닮았다. 그래도 달린다. 달리는 일은 이제 가장 익숙해져버린 감정이 돼버렸다. 최소한 뛰는 동안만큼은 편하다. 상황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적극적으로 몰입하기 위해서다. 고통을 생각하면, 생각하는 그 자체... [나재필 기자]
▶사람의 두 발에는 52개의 뼈와 38개의 근육, 214개의 인대가 있다. 몸 전체 뼈 206개의 약 4분의 1이 모여 있는 셈이다. 발가락들은 ‘발’로서의 개별성이 아니라 ‘몸’을 지탱하는 객체로서의 보편성을 띤다. '발(足)'은 보직만큼이나 견뎌야할 고통도 크다. 딱딱한 바닥에 발을 내딛는 순간 체중의 1.5배에 이르는 충격이 고스란히 52개의 뼈에 전달된다. 발에 전달된 자극은 발목과 무릎, 척추를 거쳐 전신으로 퍼진다. 보통 1.5㎞를 뛴다면 발뒤꿈치는 땅바닥에 1000번 정도 닿는다. 42.195㎞를 뛰려면 최소 66... [나재필 기자]
▶조선이 몰락하는 마지막 100년은 '민란(民亂)의 시대'였다. 19세기 여명을 여는 1800년, 개혁정치를 펼치던 정조의 죽음과 함께 민중들은 거칠게 깨어났다. 관서 농민전쟁(홍경래의 난)을 비롯해 삼남 농민봉기(진주민란), 광양 민란, 동학농민혁명 등이 잇따라 봉기했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지방차별정책, 세도정치에 의한 권력독점, 가혹한 조세와 수탈이었다. 민란이 삼남지방(충청·경상·전라)에 집중적으로 일어난 까닭은 '삼정(토지세·군세·지방세) 문란' 때문이다. 탐관오리들은 규정보다 조세를 많이 걷었고, 심지어 어린아이... [나재필 기자]
▶세상이 하 수상해서 점(占)을 봤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운수(運數)를 보면 속이 조금은 풀린다. 물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기 싫은 건 믿지 않는다. '아니면 말고' 식이니까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기억할 것만 기억하는 것이다. 점쟁이는 필자의 사주팔자를 의기양양하게 풀어놓았다. "10대는 외롭게 보냈고, 20~40세까지는 괴롭게 보냈구먼.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지 못했어. 하지만 말년 운이 좋아. 오십 중반에 대운이 있어. 관운(官運)이 트인다는 말이지. 이때부터는 팔자가 피네그려. 근데 역마살(驛馬煞)이 있구... [나재필 기자]
▶노무현은 골초였다. 여사님 성화에 못 이겨 담배를 끊었다고 공언했지만 끝내 끊지 못했다. 대통령시절, 문재인 혹은 부속실 직원에게 담배 한 개비를 빌리기도 했고, 참모와 몰래 화장실에서 끽연하기도 했다. 그는 눈높이가 낮았다. 정확히 말하면 눈높이를 잘 맞췄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는 주민들과 하천을 청소하고 나무를 함께 심었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탔고, 정치담론보다 오리농법을 얘기했다. 주민들과 항상 같은 높이에서 있었다. 문재인은 민초였다. 청와대 수석 이후 그는 경남 양산에서 농사꾼으로 살았다. 책 보는 시간 빼고는... [나재필 기자]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蒸氣)기관은 기술을 바꾼 게 아니라 세상을 바꿨다. 대량 생산과 대량 운송은 규모의 경제를 낳으면서 자본 운용과 생산체제의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일일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야만 했던 일들이 ‘기계 손’에 의해 해결됐다. 공장들은 덩치가 커졌고, 엔진은 일 년 내내 쉼 없이 돌아갔다. 이는 거대 상업화로 연결됐다. 단순한 기체라고만 여겼던 증기를 열에너지로 활용한 발상은 다양한 발명의 플랫폼 구실을 했다. 1차 산업혁명의 매개, 와트의 증기기관은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시대'를 바꾼... [나재필 기자]
▶309.36㎞. 아들을 만나기 위한 ‘반바퀴’ 거리다. 편도가 자그마치 서울~대전을 왕복하고도 남는다.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전방 부대(部隊)로 떠난 지 딱 두 달 만이다. 새벽 4시, 강원도 양양으로 떠난다. 한눈팔지 않고 내달려도 4시간이나 걸린다. 다소 먼 여정이지만 줄달음친다. 보고 싶어서, 보고 또 보고 싶어서. 김정은이 나대고, 시진핑이 눈치보고, 트럼프가 오락가락하는 요즘, 나라 지키는 일은 고행이다. 가끔은 이런 불가항력적인 구속에 항거하고 싶어진다. 국가는 국민을 보위하고 행복하게 할 의무가 있다. 4대 ... [나재필 기자]
▶이사를 또 했다. 내 생애 스무 번째다. 대략 2.5년에 한 번꼴이니 거의 유목민 수준이다. 태어나서 스무 살까지 여섯 번, 자취방을 전전하고 장가를 가면서 열네 번 보따리를 쌌다. '이사'란 하면 할수록 몸집이 분다. 모으긴 쉬워도 버리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이 비웠다. 헌집의 것들은 온전치 못한 것들이어서 이미 버려질 운명이었다. 이사를 마치자 일상이 엉키고 생각이 엉켰다. 새집에서 자꾸 헌집 생각이 났다. 헌것과 새것은 내뿜는 그림자마저도 둘로 나뉜다. ▶이삿짐을 푼 첫밤은 언제나 당혹스럽다. 왠지 모를 이물감... [나재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