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들을 첫날이자 마지막 날로 살고자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마흔에 거리 한복판에 쓰러진다. 보름 만에 의식을 찾은 그의 몸은 오른쪽 신경이 모두 마비된 상태이다. 1급 중증장애인 된 그는 의학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루아침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북토크가 있었다. ‘해맑은 영혼처럼’ 밝고 맑은 작가를 만났다. 마비된 한 쪽으로 올곧게 걷기도, 팔을 쓰고, 말하기도 힘들었을 20여 년 동안, 자신을 세상에 놓고 적응해 간 과정을 글로 쓰며 삶을 치유했다. 작가는 운전부터
전화를 받았다. 치매가 걸린 시어머님을 모시던 친구가 상을 당했으니, 저녁에 문상하러 가자고 한다. 조문 하고 돌아오는 길에 찻집에 들렀다. 건망증이 점점 심각해진다며 치매가 아닐까 이구동성 이야기를 쏟아냈다. 우리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 나이가 되었다고 인정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서로를 토닥였다.‘보이고 싶지 않은 나’를 드러내며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시아버님도 치매가 있었다. 특히 먹는 것에 집착하셨다.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약봉지처럼 싸서 음식을 서랍 구석구석에 숨겨 두셨다. 당뇨로
폭풍우가 지나간 여름 끝자락 새벽바람을 가르며 충북교육의 미래를 걱정하고 올바른 학교 문화를 조성하려는 조찬 강연에 참석하였다. 윤건영 충북도교육감께서 강연자로 나서 "디지털 시대에도 변치 않은 사실은 독서를 많이 하여야 꿈을 키울 수 있고, 지식보다는 인성이 더 중요하다"라는 내용이었다.대가족 시대에는 어른의 서열이 분명하였다. 밥상을 받으면 조부모님이 수저를 드시기 전에는 먼저 수저를 들 수가 없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위계질서였다. 곤궁한 시절 이웃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가져와도 집안의 제일 어른이 드시기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앙투안 오귀스탱 쿠르노는 마주침은 독립적인 계열들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마주침은 접촉과 같은 선상에 있다. 평행하지 않은 두 직선은 언젠가 마주치는 교차점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건과 사건 사이의 관계는 마주침에 의해 다른 일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28세 여자의 오빠와 29세 남자는 전혀 다른 계열이다. 각기 다른 계열이 동시에 아는 지인에게 결혼 상대를 부탁한다. 이는 하나의 독립된 또 다른 계열의 시작, 한 가정을 이루는 시작점이 된다. 내리는 비를 보면서 사유한 알튀세르의 마주침의 철학
팔월의 날씨가 괴이하다. 그냥 여름이라 더운 거라 치부하기엔 이상스러울 정도로 된더위가 치닫는다. 갑자기 들이붓는 소낙비를 피할새 없이 쫄딱 맞고 있던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하늘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볼멘소리를 한다. "참, 날씨 한번 개떡 같구먼." 그 옆을 지나쳐오며 개떡 같다는 말의 의미를 찾으려 하늘을 보니 어디라도 한점 흠잡을 곳 없을 만큼 하늘이 청명하다. 저 파란 하늘에 소낙비라니 그 말이 나올만하다. 장마가 지루하게 내리는 여름날이면 어머니는 개떡을 만드셨다. 그 더운 오뉴월 폭양인데 뒷마당 화덕 위에 양은솥을 걸어놓고
며칠 전 직장 후배 셋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대화 중 후배가 자신의 지인을 일컫는 말에 "아시는 분"이라 지칭했다. 그 후에도 두세 번 더 그렇게 얘기를 마무리하였다. 나는 "아시는 분"이라 지칭하는 건 "아시는"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고, "아는 분"으로 지칭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비단 그 후배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상대를 존칭하는 표현에 오류를 범한다. 그만큼 우리말에는 일반적인 호칭과 존칭어가 구별되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말은 한번 뱉으면 주어 담을 수가 없다’며 삼사일언(三思一言)으로 신중을 기하라는 가르침을 주셨
프로이트는 "인간의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삶이 지속되는 동안 끊임없이 욕망을 채우려 한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러기에 결핍을 채우려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지 모른다.15평 소형 아파트를 장만하던 날, 꿈인지 생시인지 잠 못 이루었다. 경차를 구입해 첫 시승을 하던 날 백설 공주가 마차를 탄 것처럼 행복했다. 남편에게 작은 선물을 받을 땐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자였고, 딸이 첫 아르바이트로 사준 지갑을 받을 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였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과 충만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세찬 소낙비가 한 줄 금 쏟아졌다. 하늘을 덮고 있던 먹구름이 대지 위로 곤두박질치며 순식간에 사방을 빗속에 가두더니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태양이 뜨겁게 내리쬔다. 오뉴월 장맛비는 소 등걸을 두고 다툰다는 말이 있더니 멀찍이 보이는 동네까지 하늘은 쾌청하다.물 폭탄 같던 소낙비가 남기고 간 땅의 풍경이 아직도 질척하다.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한 탓에 문밖을 나가기가 썩 내키지 않지만, 툭 털고 일어나 산책길에 나섰다.며칠 전부터 칸나가 발그레한 꽃망울을 뾰족이 내밀더니 그새 만개했다. 빗방울과 햇살을 동시에 머금고 있는 붉은 꽃과
장마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 국지성 폭우로 인하여 아까운 생명을 잃기도 하고. 이른 봄부터 애써 가꿔온 농작물이 큰 손실을 보는 경우도 있다.또한 도심의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이 침수 걱정을 해야 하는 현실에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느끼기도 한다.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개발이란 명목 아래 환경 파괴로 인한 인재가 더 많다는 사실에 걱정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인간이 저지른 난개발에 인간이 피해를 보는 자본주의 병폐가 가져온 돈의 위력 앞에 나약해지는 세상사가 서글퍼지곤 한다.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다. 전국의 도로와
어린 왕자가 떨어진 곳은 아무도 만날 수가 없는 외로운 사막이었다."어느 날에는 해 지는 모습을 마흔 네 번이나 보았어요." 잠시 후 그는 말을 이었다. "아저씨도 알 거예요. 누구나 몹시 슬픈 날에는 해 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요.""마흔 네 번이나 볼 만큼 슬펐었니?" 어린 왕자,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장면을 읽으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염없이 일몰을 바라보는 어린 왕자의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린왕자의 고독하고 외로운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가끔 외로움이 불쑥 나를 엄습한다.
어디로 갈까, 미리 목적지를 정한 곳도 없이 집을 나서도 전혀 두렵지 않다.어딘들 어쩌랴.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내게 주어진 한유를 즐길 요량이면 목적지를 정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오늘은 집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가볼까 하는 마음에 자동차에 올랐다. 나만큼이나 주행 연륜이 쌓인 애마지만 어디고 늘 함께해주는 것이 감사하다.살짝 열어놓은 차창으로 밀고 들어오는 바람결이 상쾌하다. 그뿐인가. 앞 유리창 넓이만큼 보이는 전방에서 온통 풀빛으로 물든 산색이 녹음방초로 출렁대며 어서 오라 손짓하는 듯하다.집에서 출발한 지 불과 이십여 분
오래전 다른 지역에서 살 때 오카리나 연주봉사단에서 연주 봉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합창단이 없던 지역이라 6·25전쟁 기념식을 할 때면 오카리나봉사단원들이 합창단 대신 참석했다.기념식에서 전쟁미망인 모임의 회장님이 전사자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글을 읽었다. 기념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그녀의 절절한 사연에 눈시울을 붉혀 유난히 인상 깊었다. 그 후 이사를 하면서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 우연히 그 지역 지인을 만나 10여년 만에 미망인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고, 평생 갖은 고생 하면
유토피아!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 현실 세계가 아닌 이상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상향에 대한 꿈은 비단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도연명이 말하는 무릉도원이 그렇고 청산별곡의 청산도도 나름 이상향의 공간이다.최인훈의 ‘광장’을 읽는다. 소설 속 주인공이 바라는 진정한 이상향은 무엇이었을까. 주인공 이명준은 남북의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진정한 삶의 터전을 찾아 헤맨다. 소설 ‘광장’에서 북한은 이데올로기의 허상이요. ‘밀실’은 남한의 방종과 타락이 난무하는 이기주의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오월의 사방은 어디를 둘러봐도 만화방창이다. 풀내음과 꽃향기는 지천에서 날리고 춘광(春光)은 각양의 색으로 눈이 부시다. 그래서 오월을 일컬어 계절의 여왕이라 불렀나 보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니 화등잔에서 타오르는 불꽃같은 장미꽃이 여기저기 피어났다. 서슬 퍼런 가시만 겨우내 서리서리 감고 있던 등걸 사이로 봄 햇살 받고 여린 촉을 틔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붉은 장미 송이를 담장 위로 흐드러지게 터트려 놓았다. 진초록 잎새들과 붉디붉은 장미의 어울림이 황홀할 만큼 곱다. 삼백예순 날, 늘 내가 오가던 길섶을 만개한 장미꽃잎이 떨어져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5월이다.가정의 달, 보은의 달, 이래저래 이름이 붙은 날이 많다.베이비부머 세대인지라 어린이날 특별한 선물이나 축하받은 기억은 없다.어버이날은 미술 시간 색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에 "어버이 은혜 사랑합니다"는 리본을 달아 가슴에 달아드렸다. 조부모님과 삼촌 고모들까지 삼 대 10여 명의 대가족이 살았기에 동생들과 카네이션 4개를 만들어 할아버지 할머니 가슴에도 달아드렸다.가슴에 꽃을 달고 자랑스럽게 마실 다니시던 할머니에 비해 꽃을 달지 못한 이웃집 할머니는 의기소침해 방문 출입을 하지 않으셨다. 눈치 빠른
이천 강의를 하러 갔다 접촉 사고가 있었다.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나오다 중앙선을 두고 진입하는 자동차와 부딪쳤다. ‘거리두기’위반이다. 운행에는 지장이 없을 듯 했지만, 청주로 내려가야 하니 점검해 보려고 카센터로 향했다. 가는 도중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도착해 보니 앞바퀴를 감싸고 있는 물받이가 깨져 자동차 바퀴와 부딪치는 소리였다.물받이는 비가 오면 물이 사방으로 튀어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는 장치이다. 물받이와 바퀴 사이에는 완충지대가 있다. 완충지대란 충돌이 일어날 때 필연적으로 따르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설
사월은 어딜 가나 만화방창이다.눈이 부시도록 화려하게 피어나던 꽃들도 봄비 한 줄금에 꽃잎을 하나둘 떨구더니 꽃 진자리마다 초록의 잎새를 내밀고 있다. 화단 한 자락에 있던 명자꽃 한 무더기 아래로 화려했던 시간의 흔적인 양 떨구어진 꽃잎들이 발갛게 머물러있는 풍경이 그지없이 곱다.낙화가 더 붉고 향기롭다.무리 진 꽃잎들을 즈려밟고 한 줌 집어 바람에 날려본다. 허공을 향해 날리는 분분한 꽃잎이 친구의 음성처럼 애잔한 환영이 되어 그 자리를 맴돌다 도루 떨어진다."꽃이 필 때도, 꽃이 질 때도 먼저 간 아내가 몹시도 그립다."오랜만
지난주 어느 업체의 정문에서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하고 방문하였다. 비밀 유지를 해야 하는 곳이기에 함부로 일반인 출입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정문 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한쪽 구석에 흡연자를 위한 재떨이와 쓰레기통이 있었다. 플랜트 비가림막에 낡은 벤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설이 무색하게 넘쳐나는 쓰레기와 함부로 버려진 재활용품 등등…. 썩은 악취와 담배꽁초로 인한 니코틴 냄새가 역겨워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마음으로 함께하는 "환경 친구들" SNS 모임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나의 좁은 식견으로
청주시에서 시행하는 1인 1책 펴내기 운동이 올해로 17회를 맞는다.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운동은 전국 유일무이한 사업이라 한다. 또한 우리 청주시민만이 참여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혜택이기에 감사하고 소중하다. 2007년도 출범 당시 지도 강사로 창단 구성원이 되어 활동한 지 어언 십수 년이 흘렀다. 1인 1책 펴내기 운동은 남상우 시장님 재직 시 직지의 고장이며 예향과 교육 도시답게 출판비 일부를 청주시에서 지원해주며 자신이 알고있는 역사나 향토자료 혹은 살아온 날들중에 남기고싶은 소재로 나만의 책 한 권씩을 만들자는 취지의
가끔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왕자를 펼친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 오기까지 여섯 개의 작은 별을 지나온다. 어린 왕자가 지나온 별에는 위선과 쾌락, 물질 등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산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어른들이다.어린왕자와 여우는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서 만나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엿 들으며 ‘길들임의 철학’을 알았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것이다.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는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누군가를 길들이며 이어진다. 우리는 수십억 인구 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