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작두산 해발 378m 능선봉 팔각정자인 국태정(國泰亭)에 올랐다. 산경 전체가 한 눈 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대청호 푸른 물이 산 사이를 누비며 멀리 이어지고, 푸른빛 청송들이 군데군데 변함없이 푸르디 푸른빛을 자랑하고 있을 뿐 그 수많은 수목들이 대부분 옷을 벗고 나목으로 휑하니 서 있었다. 산 빛은 이미 가을빛이 아니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알몸의 속살을 보이면서 겨울을 서두르는 처연한 몰락(沒落)의 가을이 거기 있었다. 오늘따라 산을 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어 올라오는 동안 그 한...
충청권이 타 지역 지방은행의 각축시장이 되고 있다. 충청지역에 향토은행이 부재한 탓이다. 전북은행이 충청권에서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데 이어 부산은행도 대전에서 영업을 개시했다. 일면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서비스의 다양화 등 기대효과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자금 역외 유출 등의 역작용 또한 간과할 일이 아니다. 충청권에는 없는 지방은행, 이로 인한 지역경제 득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지역 지방은행이 충청권에서 금융 사업을 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영업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
흐리어 맑지 않은 연못에서는 진주, 조개, 자갈, 모래, 고기 등 그것들이 분명히 보이지 않는 것처럼/흐린 마음에는 자타의 공덕이 보이지 않는다. 투명해 맑은 그 물에서는 진주며 모래, 고기 등 그것들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맑은 마음에는 자타의 공덕이 훤히 보인다. 사람들은 욕심이 차오르면 눈앞이 가려 앞뒤 분간을 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평소 성실한 이였는데, 호기심으로 주식투자를 했다가 그 맛에 빠져 결국엔 패가망신을 당했다. 화가 치승하면 부모형제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평소 성품이 반듯해 주...
동아리 활동을 하기 위해 청주시 평생학습관 복도에 들어서니 전시된 시가 나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학습관에서 한글을 배운 어르신들이 쓴 보석보다 더 귀하고 알찬 글들을 모아 시화전이 열렸다. 부지기수로 많은 행사 중에서 말과 글로 표현하는 시화전은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발걸음을 멈추고 전시된 작품을 감상했다. '문맹에서 글을 알고 나니 이 세상이 새 세상이 된 것 같다. 죽은 줄로 알았던 심청이를 만난 심봉사의 기쁨보다 더 크다. 먹고 살기도 어려워 학교근처에도 못가보고 칠십 평생을 살아왔다. ...
국토교통부는 2014년도 말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가 20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현실에 발맞춰 도로 및 교통안전시설은 지속적으로 향상됐고 이로 인한 출ㆍ퇴근시간 등 혼잡 시간대 교통체증은 가히 교통지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자동차수에 비해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상가 밀집지역 및 주택가 이면도로나 골목은 말할 것도 없고 아파트 주차장에도 자동차들이 무질서 하게 주차돼 소방차량의 신속한 출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재난현장의 초기 5분이란 매우 중요한 시간으로 화재 발...
쌀쌀해진 날씨와 함께 어느덧 11월이 흘러가고 있다. 이때쯤이면 연인들에게 있어 최대 관심사는 아마도 대전의 첫 눈 시기일 것이다. 연인들에게 첫눈은 낭만적인 만남을 이어주는 디딤돌이지만 반대로 군인들에게 눈은 하늘의 하얀 쓰레기라고 불릴 정도로 걸림돌이 된다. 하늘에서 내리는 똑같은 눈(雪)이지만 이처럼 처한 상황에 따라 눈은 이중성을 갖고 된다. 유성구의 경우 눈은 지난해 1월 내린 폭설로 인해 유성시장 상인들의 걸림돌이 된 적이 있다. 유성장이 서는 날 유성시장 일원의 골목길과 이면도로가 빙판길로 변해버려 상인들과 장을 ...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치른 학부모·수험생들은 혼란스럽다. 시험은 열흘 전에 끝났지만 출제오류 논란에서 증폭된 수능 전반의 결함 때문에 애꿎은 수험생들만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1994년부터 시행된 수능에서 출제 오류는 모두 다섯 차례 있었다. 더구나 지난해 세계지리와 올해 영어·생명과학Ⅱ에서 발생한 오류는 이전 사례와는 판이하다. 단순히 출제진의 단순 실수나 부주의 탓이 아니라 출제와 검토과정의 근본적인 잘못에서 비롯된 탓이다. 수능 출제위원들은 한 달간 합숙하면서 문제를 출제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출제 가능한...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신설된 국민안전처(안전처)와 인사혁신처(인사처)는 지체 없이 세종시에 둥지를 틀어야 마땅하다. 두 기관의 입지 결정을 위해 법을 개정하고 고시하는 절차만 남아있을 뿐이다. 안전처와 인사처는 서울에 남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지방 근무를 기피하려는 직원들의 아집에 불과하다. 행정의 효율성이나 국민안전의 통합적 관리를 위해서 두 기관은 세종시로 이전하는 게 순리다. 그제 출범한 안전처와 인사처는 광화문 인근 정부서울청사와 민간 사무빌딩을 청사로 활용하고 있다. 세종시에 청사 공간이 마련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
지난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4·자·방 비리’와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 파기는 실로 점입가경이다. 100조원에 육박하는 4대강 삽질과 자원개발투자, 방위산업 비리 의혹은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극임이 점점 가시화하고 있다. 절대다수의 극심한 반대 여론에도 멈추지 않았던 4대강 사업의 폐해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한 해 유지·관리비만으로도 7200억여원이 소요된다. 자원개발 명목으로 해외 각지에 투자한 돈은 가히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또한 수상구조선인 통영함엔 첨단 군 장비가 아닌 어선용 어군 탐지기를 달아놓았다. 각종 군함...
꼭 50년 전인 1964년 12월 서울시 중학교 전기 입시에 출제되었던 문제오류와 거센 후폭풍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당시 엿을 만드는 원료를 묻는 문제의 공식정답은 '디아스타제'였지만 무즙(汁)도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결국 소송으로 이어져 다음해 봄 30여명이 세칭 일류중학교에 추가 합격하였다. 일부 극성 부모들은 무즙으로 엿을 고아 솥단지를 들고 서울시 교육감 집무실로 들이닥치기도 하였다. 이 사태가 "엿 먹어라"라는 표현이 조롱과 욕설로 쓰인 발단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4년 뒤 1969년 서...
겨울이 시작된다는 뜻의 입동(立冬)은 지났고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절기는 오는 11월 22일에 닿는다. 소설 무렵에는 아직 한겨울의 겨울 추위는 아니고 따뜻한 햇살이 남아 있어 소춘(小春)이라고도 하나 눈발이 나닐 정도의 추위가 찾아오기 때문에 겨울채비를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우리 농촌에는 가을 추수를 마치고 겨울을 나기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한다. 무말랭이를 만들고 시래기를 엮어 말리며 호박고지도 만든다. 또 겨울철 소의 먹이로 쓸 볏짚과 건초도 장만하고, 지붕과 담장을 고치기도 했다. 이 모든 겨우살이 준...
요즘 한화이글스를 보면 ‘역시 야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성근 감독과 한화의 만남은 그것이 성사되기 전 ‘설’로써 나돌 때도, 만천하에 공개됐을 때도, 유니폼을 입고 지휘봉을 잡은 지금도 화제의 중심에 있다. 오히려 가을야구가 뉴스의 헤드라인에서 밀렸을 정도로 야신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는 지난달 25일 제10대 사령탑으로 김성근 감독을 선임했다. 야신의 한화행은 계약기간 3년·계약금 5억원·연봉 5억원에 이뤄졌다. 김응용 전 감독이 2012년 10월 한화로 오면서 받은 2년간 9억원(계약금 3억·연봉 3억...
황사먼지만 휘날리는 황량한 지구. 이제 더 이상 지구는 우리 인간의 삶을 지탱해줄 희망의 별이 아니다. 고도문명을 자랑하던 인류사회의 마지막 희망은 이제 자원고갈로 식량마저 구하기 어려운 지구를 벗어나 새로운 우주속의 지구와 같은 별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다. 머나먼 우주로의 탐험은 빛과 같은 광속으로 태양계를 벗어나 새 은하계를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와 같은 상상이 실제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13일 유럽우주국(ESA)은 혜성 탐사선 ‘로제타’에 실려 있던 탐사로봇 ‘필레’가 탐사목적 혜성인 ‘67P/추류모프-게...
교문을 들어설 때면 언제나 가슴이 뛴다. 소통 중 으뜸은 따뜻한 손 맞잡고, 눈빛을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에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를 찾아 학생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곤 한다. 며칠 전 갈산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향토사와 전설을 연구하며 인문학에 조회가 깊은 교장선생님께서 책 내음 가득한 도서관으로 안내해 주셨다.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은 소과 초시에 응시해 장원을 했지만 이듬 해 복시에서 일부러 답안을 제출하지 않고 낙방했다. 이후 과거 시험을 단념하고 전국의 산천을 유람하며 견문을 넓혔다. '서사예화'는 기본이고 천문지...
전국 광역 지자체 중 유일하게 민항공항 없는 충남도. 충남도는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해법을 찾아 왔으나 현재까지 이렇다할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사실 이 군비행장에 민항유치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미 충남도가 2007년 민항유치 사전조사 연구용역을 한 바 있고, 선거철만 되면 도지사나 국회의원 등 후보들의 단골 공약이 된 지 오래다. 십 수 년 된 이 해묵은 현안에 다시 불을 지핀 건 이완섭 서산시장이다. 이 시장은 지난 7월 안희정 도지사에게 민항유치를 위해 충남도 차원에서 태스크포스(TF)팀...
정부 요인 60명에 대한 본보의 출신 지역 분석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상대로 주요 직책을 특정지역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현상은 소위 권력기관장으로 불리는 직책에서 더욱 심각했다. 특정지역은 영남지역 등을 일컫는다. 편중인사가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경험이 입증해주고 있다. 연말께 박근혜정부 3기 개각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개각에 앞서 명심해야할 부분이다. 정부조직 17부5처16청/2원5실6위원회의 장관·차관급 외청장·여당 대표 등 정부 요인 60명 중 무려 26명(43%)...
▶30년 전 아버지는 자식의 공납금을 위해 밭뙈기를 팔았다. 소도 팔았고 키우던 강아지도 팔았다. 그런데 언젠가 사과 한 알을 몰래 따먹었다가 혼꾸멍난 적이 있었다. ‘자식농사’를 위한 밑천이 ‘과수농사’였는데 왜 썩은 걸 먹지 않고 온전한 걸 먹었냐는 게 이유였다. 과수원집 아들은 까치가 쪼아 먹다 남긴 사과를 먹고, 슈퍼마켓 아들은 유통기한이 끝난 과자를 먹어야한다는 걸 잠시 잊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았다. 단지 죄라면 배고픈 입(口)이 문제였으니까. 그 사건이후 난 사과를 돈 주고 사먹지 않는다. 비싸서가 아니라...
"똑! 똑! 똑!" "들어오세요." 새로운 학교에 부임하고 이틀째 되는 9월 2일 오후. 교장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 손님은 성인이 아닌 조그마한 여자아이 일곱 명. "어쩐 일이지?" "교장 선생님! 우리 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강산이 몇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을 교직에 머물면서 이번처럼 아이들에게 부임인사를 받아본 적은 처음 있는 일이라 순간 무슨 말로 답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방문한 아이들은 2학년 아이들로 누가 주동해서 오게 된 것인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일부 아이들만 방문한 것으로 보아 담임교사가 시키지는 ...
현대사회는 속도와 효율이 진리이며 갑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지구에서 목성, 토성까지 신나게 달린다. 달리지 않으면 가족도 못 만나고 지구도 못 구한다. 하지만 질주의 반대개념인 느림은 지구는 못 구할지 몰라도 충북은 구할 수 있다. 어떻게? 지금까지의 지역발전은 토목, 건축, 기계 등을 주축으로 해서 시공간의 재구성을 통한 발전의 영속화였다. 즉 중후장대한 시설로 가득 찬 공단이나 산업단지가 발전이고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맹률이 40%에 가까운 부탄이라는 나라가 매년 행복도 관련 조사에...
전 세계 모든 지도자들이 국가의 정부 혁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미국의 클린턴, 앨 고어 정부는 정부혁신의 길이라는 주제로, 그리고 일본의 호소카와 정권은 일본의 대개조론으로 정부 혁신을 추진해 왔다. 왜 모든 나라에서는 혁신을 추진하는 것일까? 결국 더 좋은 나라, 더 일 잘하는 정부, 주권자인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효율적이면서 경쟁력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 낼 것이냐? 어떻게 혁신할 것이냐?'하는 문제는 전 세계 모든 정부들이 가지고 있는 과제다. 이 과제를 ...